월가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2·4분기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당초 예상된 내년 여름보다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16~1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조기 인상의 신호를 내놓을 가능성도 커졌다. 연준이 출구전략을 시사할 경우 신흥국이 지난해 5월에 이어 2차 '긴축 발작(taper tantrum)'을 일으킬 것이라는 경고도 속출하고 있다.
◇'상당기간' 문구 폐기가 신호탄=지난 11일 로이터가 월가 이코노미스트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가 기준금리 인상 시기로 내년 2·4분기를 예상했다. 미국의 노동시장·부동산·경기 등의 회복세가 견조한데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시사로 연준이 출구전략에 들어가도 미국 경제가 입을 충격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투자가들은 기준금리 조기 인상 리스크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연준이 내년 3월에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속출하고 있다. 애덤 포센 전 영국 중앙은행(BOE) 통화정책이사는 "FOMC 내 매파의 목소리는 커지는 반면 재닛 옐런 의장 등 비둘기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며 "연준이 금리를 0.25%포인트 올려도 시장에 큰 충격이 없는 만큼 내년 3∼4월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이비스 슐먼 UCLA 이코노미스트도 "연준이 내년 3월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최소한 2016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할 것"이라며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내년 말 3.7%, 2016년 말에는 4.1%까지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준금리 조기 인상설이 확산되면서 이번 FOMC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초 시장에서는 연준이 10월 FOMC에서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종료하면서 출구전략도 시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시장의 눈길은 연준이 9월 FOMC에서 '양적완화 종료 후에도 상당 시간(considerable time)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통화정책 선제 안내)에서 '상당 기간'이라는 문구를 삭제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상당 기간'이라는 문구가 삭제될 경우 금리 조기 인상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은 이 문구의 삭제 확률을 절반 정도로 보고 있다. 보리스 르자빈스키 UBS AG 금리파생 분석가는 "이번 FOMC는 기존의 경기부양에서 긴축 단계로 이동하는 신호를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선제 안내에 변화를 줄 경우 옐런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번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더라도 급격한 금리인상이 없다는 발언을 내놓는 등 불안감 달래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8월 산업생산이 예상 외로 저조하게 나오는 등 경제 회복세가 아직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신흥국 2차 '긴축 발작' 오나=연준의 금리 조기 인상 시사는 신흥국 금융시장에는 대형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5월에도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조치를 시사한 후 일부 신흥국의 통화·채권·주가가 트리플 약세를 보이면서 금융위기 가능성마저 불거졌다. 더구나 연준의 테이퍼링이 리허설이라면 출구전략은 본 게임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신흥국의 과도한 민간 부채가 위기의 뇌관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는 동남아시아 주요 기업이 과다 차입과 수익성 악화로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이 커졌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동남아시아 100대 상장 기업의 수익 대비 부채 비율이 2011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해 이들 기업의 부채는 5,010억달러로 최근 4년간 89%나 급증했고 평균 자본이익률(ROE)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들 기업의 성장은 줄어든 반면 차입은 늘면서 금리인상 때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보고서에서 "일부 신흥국 기업의 차입이 해당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했다"며 "신흥 시장이 금리인상과 환율충격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이들 기업의 달러 자본 조달 금리는 지난 12일 현재 4.75%로 이달 들어서만 0.14%포인트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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