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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맞선 어둠속 그림자… 배트맨 75년 역사 한눈에

■ 새책 '배트맨 앤솔로지'

1939년 탄생부터 현재까지… 화제 모은 작품 20편 담아

배트맨 앤솔로지 /사진=세미콜론(ⓒ2015 DC Comics. All rights reserved.)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가운데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볼 때,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중)

늦은 시간 인적 드문 뒷골목, 한 여자가 괴한에게 붙들린다. 결정적 순간 어둠 속 괴물 같은 그림자가 난폭하게 악당을 사냥한다. 실루엣만으로도 우리는 안다. 어둠 속 단호한 폭력과 공포로 악(惡)에 대응하는 심판자, 배트맨이다.

웨인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이자 억만장자인 브루스 웨인. '쾌걸 조로'가 그랬듯 바람둥이 한량 이미지인 그는 어린 시절 눈 앞에서 부모가 강도에게 살해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정의에 대한 사명감보다 악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그에게서 초인적인 힘을 끌어낸다. 남몰래 육체적·지적 훈련을 거듭한 그는 검은 유니폼에 박쥐 가면을 쓴 채 오로지 단련된 몸으로, 총 없이 덜 거칠고 덜 극단적인 방법으로 도시의 악당들을 물리쳐간다.

생각 없는 한량과 어둠 속 응징자를 오가는 이중 생활, 하지만 그에게는 난폭하고 비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스스로 양지의 수호자가 감당할 수 없는 악한 부분을 떠맡았다지만, 어느새 검게 물드는 자신에 대한 고뇌 역시 피할 수 없다. 영화 '무간도'에서 경찰과 폭력조직 양쪽에 침투한 스파이가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온다.



마블코믹스와 함께 미국 만화계의 양대 산맥인 DC코믹스는 1938년 슈퍼맨에 이어, 이듬해 일종의 '반(反) 영웅' 배트맨을 선보였다. 초능력 외계인인 슈퍼맨이 현란한 원색 유니폼을 입고 얼굴을 드러낸 채 싸운 전형적인 히어로였다면, 배트맨은 정반대다. 슈퍼맨이 천사의 아바타라면, 배트맨은 천사 편에서 싸우는 악마다. 스스로의 분노를 힘으로, 적의 두려움을 무기로 삼아 그림자와 안개 속에 머무른다.

이번에 출간된 '배트맨 앤솔로지'는 그 70여년 동안 선보인 원작 만화 가운데 배트맨 역사상 전환점이 됐거나 화제를 모은 작품 20편을 담고 있다. 배트맨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연대별로 해설과 함께 소개한다. 또 밥 케인, 빌 핑거, 데니스 오닐, 프랭크 밀러, 스콧 스나이더 등 배트맨 시리즈를 만들어온 작가가 미친 영향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미스터리와 SF, 판타지와 공포 등 다양한 장르적 요소가 작가·시기별로 드러나는 것 또한 이 책을 보는 재미다.

참고로 2016년 개봉을 앞둔 배트맨 시리즈 5편의 제목은 '배트맨 V 슈퍼맨'. 이 책에도 수록된 에피소드일 수 있다. 3만5,000원(어반코믹스 엮음, 세미콜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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