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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공황/“무기명 장기채등 허용 돈흐름 바꿔야”(긴급대담)
입력1997-10-29 00:00:00
수정
1997.10.29 00:00:00
종합주가지수 5백선이 무너지면서 증시가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기아사태로 촉발된 국내 금융시장의 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금융불안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증시의 폭락여파 등 외부요인이 겹치면서 국내 증시는 5년만에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이번 증시 대폭락은 국내 경제의 자체적인 문제점에다 국제금융시장의 급격한 환경변화까지 겹친 것으로 전례없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증권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경제신문은 국민투자신탁증권 김병포 전무와 대우증권 강창희 상무를 초청, 국내 증시의 폭락 원인과 향후 전망을 진단하는 긴급대담을 마련했다.
□참석자
▲김병포씨 국민투시증권 전무
▲강창희씨 대우증권 상무
◎김병포“외국인 투자비중 13%… 미·일보다 높아/국내 투자기반 취약해 증시 흔들리는 것/기업경영 투명하게 하면 떠날이유 없어”/강창희“증시 대폭락 대처 당국정책도 너무 안일/실명제 명분 집착말고 정책실리 찾아야/시중 유동자금 풍부… 출처 묻지말아야”
▲김병포 국민투자신탁증권 전무=증권시장이 5년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내 자본시장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되고 선물, 옵션시장이 개설되는 등 증시여건이 과거와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5년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번 대폭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강창희 대우증권 상무=우리 증시는 94년 1천1백30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증시는 과거 15년간 장기 상승추세에 있었고 동남아 국가들도 올초까지 상승국면을 이어갔습니다. 최근 국내 증시 폭락은 우리경제의 내적요인에다가 동남아 통화불안, 미국증시의 폭락 등 외부적 요인이 겹치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원화환율이 상승하면서 이같은 외부요인이 증폭되고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습니다. 과거 증시폭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김=동감입니다. 89년 폭락 이후 10년간 우리 증시의 시가총액은 최고 1백67조원까지 확대됐습니다. 그러나 최근 주가가 대폭락하면서 시가총액이 1백조원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직접금융시장으로서 자리매김했던 우리 증시가 사상유래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1조원정도 집중적인 매물을 내놓고 앞으로도 1조원정도 대기매물이 있다는 분석은 증시전망을 극도록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시장자체가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강=이번 대폭락의 원인은 국내적 요인과 국외적 요인으로 나눌수 있는데 기아차의 법정관리 결정으로 국내 요인은 어느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외부요인인데요. 지난 89년 블랙먼데이 때의 충격이 가신 이후 세계 증시는 회복하는 시장과 추락하는 시장으로 구별됐습니다. 홍콩증시의 폭락과 미국, 유럽증시의 연쇄 하락도 이와 비슷한 양상입니다. 우리증시도 그 영향권안에 있구요. 이들 선진증시가 한참 상승기에서 하락추세로 바뀌는 것이라면 국내 증시는 하락기조에서 대폭락사태를 맞았다는 것이 다릅니다. 미국, 홍콩 등이 이제 본격적인 하락추세에 들어섰다면 우리는 바닥에 근접한 셈이지요. 우리가 잘만 대응하면 선진증시와 달리 추가 하락을 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외국인들은 입버릇처럼 국내 기업들이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국내 투자자금이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 이번 대폭락의 한 원인입니다. 외국인 핑계만 댈 수는 없습니다. 기관투자가 입장에서는 고금리의 자금을 빌려서 주식을 살 수는 없습니다. 실명제 이후 지하에 묻힌 자금들을 제도권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제 우리증시는 기관들을 동원해서 주가를 받치는 그런 시장이 아닙니다.
▲강=맞습니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받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발권력을 동원한 증시부양은 단기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국가 신용도가 추락하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꺼내서는 안되는 카드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재 시중에 자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투기자금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10년짜리 무기명 장기채권을 발행하는 단안을 내려야 한다고 봅니다. 일체의 자금출처를 묻지 않겠다는 정부당국의 확언이 필요합니다. 또 연기금을 동원하는 조치도 필요합니다. 투신권에 한정한다면 상속가능한 주식형 수익증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채권시장도 조기에 개방해서 금리인하를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강=이번 증시 대폭락에 대처하는 우리 정책당국의 입장이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권말기에 책임있는 정책 당국자가 없습니다. 무기명 장기채발행도 실명제 정신에 위반된다는 명분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자존심, 명분 등에 얽매여서 경제의 중대한 위기를 방치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시장으로부터 오는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인위적인 부양책보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의 집중매도도 이유가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우리 기업과 시장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저평가됐다고 생각해서 투자가치를 보고 투자하면 엉뚱한 주식들이 올라갑니다. 한국경제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떠나는 자금은 어쩔수 없지만 한국을 믿지 못해서 떠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기업경영을 투명하게 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외국인 투자를 유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심한경우 외국인들은 한국경제가 자본주의인줄 알고 투자했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업의 회계장부와 감사평가를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강=기업의 입장에서도 그동안 증시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기업의 경영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리는 IR활동도 열심히하고 신뢰감을 줘야합니다. 불황기에도 수익을 내는 좋은 기업들이 많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우선주에 대한 투자제한을 없애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우선주 시가총액이 2조원정도 되는데요 기업수익이 좋아서 배당수익률이 10% 이상 나는 기업들이 10여개 이상있습니다. 우선주는 경영권과도 무관하니 이런 기업들의 우선주를 외국인들이 제한없이 사도록 한다면 몇 천억원의 자금이 들어올 것입니다. 기업의 내제가치, 투자가치가 주가에 반영되는 증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현재 국내 증시의 외국인 투자비중은 13%정도 됩니다. 미국이나 일본증시도 우리보다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국내 투자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당분간 외국인들이 국내증시를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외국인들이 보유한 종목이 우량해서 따라 샀지만 지금은 팔고나가면 어쩌나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기업내용을 투명하게 해서 신뢰가 가도록하면 외국인들이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최근의 주가폭락은 우리 기업이 이런 활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강=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환율이 1천원이 될 때를 분석해보니까 당장 이번연도에는 수익이 4%정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98년도에는 오히려 수익이 80%정도 좋아집니다.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미국내 기업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가격경쟁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환율상승이 단기적으로는 악재지만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투자자들도 수익이 나고 부도위험이 없는 기업들을 지금부터 조금씩 살때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금리이상 수익률이 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정석투자를 해야합니다.
▲김=현재 증시는 정말 위기상황에 있습니다. 시장이 보내는 이같은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투기를 위해 증시에 온사람들이 주가가 빠져서 고통을 좀 받으면 어떠냐는 식의 대처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증시는 기업에 자금을 대는 직접금융시장입니다. 미국 경제가 오늘날 세계 최강이 된 것도 증시가 부흥했기 때문입니다.
▲강=우리 경제가 힘든 것은 기업들이 은행 차입위주의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직접금융시장이 제기능을 상실한다면 앞으로 수년간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명분과 정책만으로 지금의 증시위기를 대처해서는 안됩니다.<정리=정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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