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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현안으로 다가온 원자로 폐로 기술

원자력발전소 건설하는 것만큼의 시간·비용·인력 투입해야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이 결정됐다. 건설 당시 30년으로 예정됐던 기한을 넘겼지만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추가운용이 결정된 것이다. 또한 오는 2012년에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가동된 월성 1호기가 가동 30년을 맞아 안전성 등을 평가한 뒤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안전성이나 경제성 등의 문제로 고리 1호기 또는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답은 단순하다. 사용하지 못하게 된 원자로를 ‘폐로’시키고, 발전소를 더 이상 운용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만큼의 시간과 비용, 인력을 투자해야만 한다.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은 일반적인 공장이나 발전 플랜트의 기계를 떼어내고, 건물을 허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방사능 폐기물 최소화가 관건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를 비롯한 핵심 계통은 방사능으로 오염돼 있으며, 원자력발전소를 세울 때 투입된 만큼의 각종 재료들이 방사능 폐기물로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은 얼마나 안전하게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남겨지는 방사능 폐기물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다. 고리 1호기가 앞으로 10년간 계속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결정으로 최소 2012년 월성 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원자로 해체에 대한 문제가 시급하지는 않다. 하지만 원자로 해체와 관련된 기술개발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고, 고리 1호기 역시 앞으로 10년간의 계속운전 가능성을 토대로 한 것이 때문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10년 이내에 원자로를 중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자로를 폐쇄시키는 기술과 관련해 국내의 경험은 전무한 상태다. 국내에서 최초로 가동된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이 결정된 만큼 국내에서 폐쇄된 원자로는 단 한건도 없는 셈이다. 다만 원자로 폐쇄와 관련된 국내의 경험으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보유했던 2기의 연구용 원자로를 지난 2000년부터 올해 말까지 해체한 것이 유일하다. 원자력연구원이 보유했던 연구용 원자로는 국내 원자력 연구 초기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1호기(모델명 TRIGA Mark-II)가 1962년 도입돼 1995년 1월까지 가동됐으며, 2호기(모델명 TRIGA Mark-III)는 1972년 도입돼 1995년 12월 가동이 중단됐다. 원자력연구원은 대덕 본원에 새로운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가동하면서 사용 연한이 오래된 연구용 원자로를 폐쇄키로 했다. 국내 원자력법상 원자로 시설의 폐쇄는 운영자가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2기의 연구용 원자로를 원자력연구원이 폐쇄하게 된 것. 바로 이것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이뤄진 원자로 해체 작업이다. 국내 유일의 원자력연구기관이 원자로 해체 업무를 담당함으로써 최소한의 기술 축척은 이루어진 셈이다. 원자력연구원에서 2기의 연구용 원자로 해체 업무를 담당한 제염해체기술개발부의 정운수 부장은 “규모면에서는 연구용 원자로와 상업용 발전소를 비교할 수 없지만 해체에 사용되는 기반기술은 동일하기 때문에 상당한 기술 축척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정 부장에 따르면 원자로를 해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염물질의 확산을 차단하면서 안전하게 해체하는 것과 방사능에 오염된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오염물질의 확산을 막는다는 의미는 건물 철거나 해체를 할 때 오염물질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안전 확보는 원자로 등 핵심 부분의 경우 가동중단 상태라도 사람이 직접 접근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다. 또한 오염물질을 최소화하는 것은 건물 벽 등의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오염된 부분만을 방사능 폐기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일반 건축 폐기물로 처리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만약 원자로를 포함해 주변 시설까지 모두 방사능 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면 처리 비용이 건설비용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경주에서 건설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200ℓ들이 1드럼을 처분하는데 약 300만~8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선진국의 원자로 폐로 기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시킨 경험이 있는 선진국에서는 원자로 등 핵심 부위는 해체해 바로 방사능 폐기물로 처리한다. 그리고 주변시설이나 콘크리트 구조물은 방사능에 오염된 부분을 깎아 낸 후 깎아 낸 부분만 방사능 폐기물로 처리하고, 방사능 수치가 안전한 나머지 부분은 일반 건축 폐기물로 처리한다. 원자력연구원이 연구용 원자로를 해체하면서 적용한 기술 역시 이 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을 ‘제염해체기술’이라고 한다. 즉 원자로와 관련된 시설에서 방사능 오염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제염’이며, 각 시설들을 잘라내는 것이 ‘해체’에 해당된다. 제염은 원자로 등 방사능에 노출된 핵심 부분을 제외하고, 주변 시설이나 콘크리트 구조물 표면의 방사능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는 세척제를 이용해 표면을 닦아내는 것부터 금속 또는 콘크리트 표면을 깎아 내는 방식이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연구용 원자로를 해체하면서 사용한 제염기술은 화학적 방법과 기계적 방법 두 가지다. 화학적 제염의 경우 주로 금속물에 적용하는 방법으로 부식성이 있는 산성 용액에 금속을 담가 표면의 오염물질을 녹여내는 방식이다. 이 같은 화학전해 제염을 거친 금속은 고온, 고압 스팀세척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방사능 수치가 안전할 경우 일반폐기물로 처리한다. 기계적 제염은 주로 콘크리트 구조물에 사용하는 것으로 ‘스케블러’라고 하는 연마 장비를 이용해 콘크리트 표면을 직접 깎아 낸다. 화학전해 제염이 어려운 금속 부분 역시 연마 장비를 이용해 표면을 깎아 내게 되며, 방사능 수치가 안전한 부분은 세척과정을 거쳐 일반 건축 폐기물로 처리한다. 화학전해 액과 깎아 낸 분진 등은 방사능 분리막 기술 등을 이용해 최대한 걸러낸 뒤 방사능 오염물질만을 추출해 방사능 폐기물로 처리하게 된다. 정 부장은 “인체에 안전한 수준의 방사능 수치가 나올 때까지 닦거나 깎아 냄으로써 방사성 폐기물이 아니 일반폐기물로 바꾸는 것이 제염해체기술”이라며 “최근 선진국에서는 레이저, 초음파, 플라즈마, 전기 등을 이용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 개발 중인 레이저나 플라즈마 기술은 고온의 레이저와 플라즈마를 이용해 표면의 방사능 물질을 태우는 형태며, 초음파와 전기방식은 고전압의 전기를 연결해 방사능 물질을 털어내는 형태로 아직 상용화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원자로 자체와 중성자가 닿는 부분의 금속물질은 그 자체가 이미 방사능 물질이 됐기 때문에 제염과정 없이 작게 잘라 200ℓ 크기의 방사성 폐기물 드럼에 저장하게 된다. 정 부장은 “1997년 2개의 연구용 원자로 해체 계획서 단계에서는 약 4,000 드럼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예상됐지만 제염해체 과정을 거쳐 현재 2,500 드럼 수준으로 줄였다”면서 “올해 말까지 1,500 드럼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엄청난 비용이 관건 문제는 해체를 수행한 연구용 원자로는 1호기의 열출력이 250kWt, 2호기가 2MWt의 소형이지만 제염해체 사업에 197억원의 비용이 소요됐고,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방사능 폐기물도 1,500 드럼에 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동되고 있는 상용원자로는 고리 1, 2호기를 제외하고 모두 열출력이 2,061~2,815MWt에 달한다. 연구용 원자로 처리를 전제로 한다면 원자력발전소 1기를 해체하는데 약 2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원자로 1기 건설비용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원자로의 열출력은 곧 원자로의 규모를 나타내는 것이며, 사용연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방사능 오염도가 높아져 그만큼 제염해체 해야 할 부분이 증가한다는 의미다. 정 부장은 “연구용 원자로는 방사능 수치가 낮아 보호 장구를 착용한 인력이 직접 작업했지만 30~40년 가동된 상업용 원자로는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해 원격해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번에 해체가 이뤄진 연구용 원자로의 경우 방사능 오염도가 낮아 대부분 방호복을 착용한 인력을 직접 투입해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고, 오염도가 높은 원자로 부분은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길이가 긴 수동형 로봇 팔 형태의 장비로 절단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상업용 원자로의 경우 규모가 크고 오염도 역시 높기 때문에 인력을 직접 투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차폐장치 밖에서 원격 조종이 가능한 로봇 장비를 이용해 제염해체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현재 원자력연구원에서 원자력발전소 정비작업 등에 사용되는 원격로봇을 개발 중이지만 원자로 제염해체용 로봇이 개발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원자로 해체와 관련된 가장 초보적인 기술 축적은 이뤄졌지만 상업용 원자로를 해체하기 위한 기술개발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원자로 해체기술 축적해야 원자로의 해체는 원자력법상 운영자가 담당하도록 돼 있다. 원자력법 제 31조 ‘발전용 원자로 및 관계시설의 해체’ 1항에 따르면 발전용 원자로 운영자가 해체 계획서를 작성해 주무부처인 과학기술부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으며, 이 계획서에는 해체방법·해체일정·오염제거방법 등이 담겨있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상업용 원자로의 경우 운영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담당해야 하며, 해체 능력이 있는 민간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대행해야 하는 셈이다. 국내에 이 같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없다면 외국기업에 의존해야 한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과 관련 “당초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1호기를 폐쇄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계속운전 쪽으로 방향을 전환함에 따라 법상 최소 2년 이전에 계속운전 여부에 대한 승인을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을 바꿔 고리 1호기만은 12개월 이전에 신청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른 신형 원자로에 비해 출력이 떨어지는 고리 1호기를 해체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해체기술 및 해체비용 등의 문제에 직면, 차라리 수리비용을 들이더라도 계속운전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의 경제성으로는 올바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원자로의 경우 가동률과 사용연한이 길어질수록 제염처리 해야 할 대상물이 증가한다. 이 때문에 효율적인 제염해체기술의 확보 없이 당장의 경제성만으로 계속운전을 결정하는 것은 현 세대의 폐기물을 후손에게 떠넘기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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