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부임 후 올해로 20년째. 홈구장이 하이버리에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바뀌고 대주주 권한이 미국인에게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벵거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5월 3년 재계약에 사인해 적어도 2017년 5월까지는 계속 아스널 감독으로 일한다. 2017년이면 우리 나이로 69세지만 '영원한 아스널 감독' 벵거에게 나이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벵거는 23일(한국시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은퇴에 대해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5초 이상 생각해본 적은 없다. 더 깊이 생각하면 공황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 은퇴하기에 이르다고 느끼고 있거나 은퇴 후 계획을 세워놓지 않아 겁이 난다는 뜻으로 읽히는 발언이다. 뭐가 됐든 은퇴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벵거는 2년 전 은퇴한 알렉스 퍼거슨(74)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최근 만났던 얘기도 꺼냈다. 퍼거슨은 감독 생활이 그립지 않다고 했는데 벵거가 보기에 퍼거슨은 감독 시절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룬데다 현재의 맨유도 훌륭한 사람들이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내 뒤를 이어 아스널을 이끌 후보는 마땅히 없다"는 게 벵거의 생각이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팬들 사이에 사임 요구가 거셌다. 벵거가 가는 곳마다 야유가 터졌고 관중석에는 걸개가 눈에 띄었다. 2014-2015 시즌 중반이었는데 이때 아스널은 6위에 처져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순위는 3위. 벵거 부임 후 19시즌 동안 아스널은 한 번도 4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 이적시장에서 경쟁 구단들보다 적은 돈을 쓰고도 돈방석인 챔피언스리그에는 어떻게든 팀을 데려가는 벵거를 구단 입장에서도 내칠 명분이 없다.
지난 10시즌 동안 4위 아니면 3위였던 아스널은 다음 달 개막하는 2015-2016 시즌에는 패턴을 깨고 싶어한다. '앙숙'인 조제 모리뉴 감독의 첼시가 지난 시즌 우승한 터라 벵거도 3·4위에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12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아스널은 지난달 첼시에서 골키퍼 페트르 체흐를 데려왔다. 기존 보이치에흐 슈체스니는 23일 로마로 보냈다. 골키퍼 포지션 정리를 마친 아스널은 이제 본격적으로 스트라이커 쇼핑에 나선다. 카림 벤제마(레알 마드리드), 에딘 제코(맨체스터 시티), 피에르 오바메양(도르트문트), 알렉상드르 라카제트(리옹) 등이 벵거의 레이더에 걸렸다. 지금까지 이적시장 열기를 맨유와 리버풀이 주도했다면 이제 아스널이 움직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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