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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살라딘 전술


살라딘은 12세기 이슬람 세계의 영웅이다. 그는 기독교 세력과 맞서 싸우며 십자군에 빼앗겼던 성지 예루살렘을 88년 만에 이슬람의 품으로 되찾아왔다.

살라딘의 전술은 이전의 이슬람 리더들과 달랐다. 창의적이었다. 강철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공포의 십자군 기병대를 깬 것도 발상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살라딘은 공격목표를 기병에서 기병이 탄 말로 바꿨다. 강한 기병에 맞서지 않고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떨어지는 말을 향해 창을 날렸다. 작전은 적중했다. 말을 잃은 기병은 보병과 다를 바 없었고 더 이상 두려운 존재도 아니었다.

살라딘의 전술은 예루살렘 공략에서 더욱 빛났다. 1187년 9월20일. 대공세가 시작됐다. 하지만 닷새 동안 계속된 파상공격에도 예루살렘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살라딘은 공격 목표를 바꾼다. 성 위의 병사가 아니라 성 자체를 공격하라고 명령한다.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성곽 아래까지 땅굴을 파 들어가자 극렬히 저항하던 십자군이 백기를 들었다.

살라딘 전술의 요체는 발상의 전환이다. 그래서 살라딘 전술은 그가 죽은 지 800년이 넘은 요즘에도 군사ㆍ경제ㆍ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창의력을 중요시하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더 빛이 난다.

국내에서도 살라딘 전술을 마케팅에 도입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팔도와 삼양식품은 지난해 꼬꼬면과 나가사끼짬뽕으로 라면시장을 뒤흔들었다. 올해도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비결은 ‘라면’이 아니라 ‘국물’이다. 라면 맛이 아니라 국물의 색깔로 대결의 장을 이동한 것이 주효했다. ‘라면’공략을 고집했다면 시장의 절대 강자인 농심을 흔들 수 없었을 것이다.

남양유업은 프렌치카페믹스를 내놓으며 동서식품이 주도하는 커피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커피’가 아닌 ‘프림’을 공략해 큰 효과를 봤다. 남양유업 역시 ‘커피’로 승부를 하려 했다면 돌풍을 일으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해 15년 만에 국내 맥주시장 정상에 복귀한 오비맥주나 32년 만에 섬유유연제 시장 1위가 된 샤프란도 제품 자체보다 상대의 빈틈(경영혼란)을 노린 반격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모두 강력한 적을 상대로 생각하지 못한 곳을 공략해 심대한 타격을 줬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살라딘 전술로 평가된다.

최근 한중 양국 간 현안으로 떠오른 중국 어민들의 국내어장 불법어업 문제도 살라딘식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중국 측은 자국 어선들의 불법에는 관대하게 눈을 감으면서 우리 해경의 제한적 총기사용 방침에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태도이다.

하지만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자칫 큰 불상사를 불러올 수 있다.

살라딘이라면 중국 어민이 아니라 그들의 배를 겨냥했을 것 같다. 목표는 배 뒤쪽 아랫부분에 돌출돼 있는 프로펠러나 러더(방향타)다. 중국 어선 쪽으로 그물을 풀어 프로펠러에 엉키게 하던지, 쇠막대를 밀어 프로펠러나 러더를 망가지게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프로펠러나 러더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배도 뗏목 신세가 된다. 거친 중국 어민들도 강하게 저항할 수 없다.

올해도 한 달이 흘러갔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들불처럼 번지며 진화되지 않고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 중국의 저성장, 이란 핵사태의 위험까지 겹쳐 지구촌이 홍역을 앓고 있다. 우리는 가계부채와 청년실업 문제에다 북한 정세 불안정이라는 지정학적 고민까지 더해져 있다.

마주하고 있는 적이 너무 강하다. 이럴 때일수록 개인ㆍ기업ㆍ국가 모두 위기 돌파를 위한 창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살라딘 전술이 필요하다. /sjcha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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