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붐이 일어났던 지난 2006년 서울 도봉구의 한 반지층 빌라를 1억2,000만원에 사들인 정모(40)씨는 임대수익과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당초 계획과 달리 9년째 이로 인해 골치를 썩고 있다. 아파트 대체상품으로 투자가치가 높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인근에 비슷한 매물이 쏟아지는 통에 좀처럼 차익을 거두기 힘들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매물가격까지 1억원으로 오히려 낮아지면서 9년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전세난으로 다세대·다가구주택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다세대·다가구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상승한 뒤 역전세난이 이어졌던 상황이 몇 차례 반복돼 이번에도 동일한 후폭퐁이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13일 역대 1·4분기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의 인허가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올해 인허가 물량은 4만2,048가구로 2012년 이후 처음 4만가구대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2년 1·4분기 실적인 4만6,486가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거래량도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3월 서울 내 아파트와 다세대·연립주택 거래량은 각각 1만3,044가구와 5,431가구였지만 한 달 뒤 1만3,926가구와 6,516가구로 늘어났다. 한 달 새 아파트 거래는 6.7%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다세대·연립주택은 19.9% 증가한 것이다.
아파트에 비해 선호도가 낮은 다세대·다가구주택이 인기 상품으로 변신한 데는 전세난의 영향이 크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가격이 많이 상승하다 보니 아파트값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는 수요자들이 아파트 이외 주택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다 인허가 이후 입주까지 2~3년 정도 걸리는 아파트에 비해 빌라는 6개월 안에 가능하기 때문에 틈새상품으로 공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공급을 늘려 단기적으로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다세대·다가구주택이 기여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2011년 '12·7 부동산대책'을 통해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에 대한 건설자금 저리대출(연 2%) 지원을 1년 연장하는 한편 지난해 '10·30 전월세 대책'에서도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을 확대해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2000년대 초반 때도 전세난이 심해 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의 인허가가 폭증했지만 1년이 지난 뒤 역전세난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역전세난은 집주인이 오히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분양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실제로 2001년 20만4,407가구와 2002년 20만563가구의 다세대주택이 인허가를 받으며 고점을 찍은 후 수급불균형이 발생하면서 2004년 역전세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주거 상향이 아닌 하향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다세대주택은 주택 간 거리나 주차공간 등이 아파트에 비해 열악하기 때문에 공급을 늘리는 효과와 함께 전반적인 주거여건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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