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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흘러 유망 직장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지만 산업은행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 중 한 곳이다. 안정된 직장에 뱅커로서의 자부심까지 더해 대졸자들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런 곳을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다닐 수 있다면.
지난 24일 신입 행원 사령장을 받은 산업은행 고졸 출신 행원들의 얼굴에는 환호 속에 비장함까지 배어나왔다. '드디어 은행원으로서의 사령장을 받았다'는 기쁨의 눈빛부터 '세계 최고의 프라이빗 뱅커(PB)로 성장하겠다'는 결의까지, 속된 말로 '꿈과 열정'이 가득했다. 이따금 정규직 고졸 행원으로 엄습해오는 부담감도 느껴졌다. 황지정보산업고를 졸업한 조희경씨는 "정말 열심히 해야 후배들한테도 이런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후배들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15일 산업은행의 고졸 행원으로 채용된 48명이 사령장을 받고 각 지점에 배치됐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에서는 사실상 첫 고졸 정규직 채용이었던 만큼 이들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사실 처음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대졸과 경쟁해 살아남을지 걱정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산업은행이 갖는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는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서류전형→필기시업→1차 면접→2차 면접' 등 모두 4단계를 통과해야 했다.
채용의 백미는 차별화된 1차 면접. 스포츠 면접을 진행했는데 배구, 피구, 공 전달하기 등 다양한 각도에서 인성과 역량을 평가했다.
3개월간의 연수는 더 혹독했다. 1주는 기본소양 과정으로 부담이 없었지만 2주 차부터는 달랐다. 6주간에 걸쳐 금융 전반에 대한 기초지식을 학습하는 금융기초 과정을 이수했고 나머지 5주는 실전을 방불하게 하는 실무교육 과정이 이어졌다. 임은희(성동글로벌경영고)씨는 "3개월 연수과정이 힘도 들었지만 보람도 컸다"고 말했다.
연수의 대미는 '가족초청 공연 및 만찬'으로 장식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가족들 앞에서 신입 행원들이 준비한 공연을 직접 보여주면서 어엿한 금융인으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가족을 위해 연수원에서 숙식까지 제공했다.
어려운 절차를 통과해서인지 사령장을 받은 48명의 포부는 대단했다. 김지찬(평촌정보산업고)씨도 "고졸 남자 채용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산업은행이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면서 "디자인과에서 갈고 닦은 창의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유재용(덕수고)씨는 산업은행 채용과 함께 대학까지 합격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서울과학기술대 글로벌경영학과에 합격한 그는 "은행에서 등록금을 전액 지원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어 기쁘다. 세계 최고의 PB가 되겠다"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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