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이르면 11일(현지시간) 연방정부 부채상한을 단기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여 미국이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정치권과 백악관 간의 협상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연방정부 셧다운(정부 폐쇄) 사태도 다음주에는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내 극우세력인 티파티가 건강보험개혁 법안,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연기하지 않으면 2014회계연도(2013년 10월~2014년 9월)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해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는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셧다운 사태가 시작된 지 10일 만에 처음으로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등을 위해 90분간 회담을 했다. 협상에 앞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재정지출 삭감을 조건으로 6주간 연방정부 부채상한을 늘려 디폴트를 일시 차단하자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
이에 대해 회담에 참석한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네'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주ㆍ공화 양당과 백악관은 국가 디폴트 사태만은 막기 위해 부채한도 상향조정 기간과 규모를 놓고 밤샘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워싱턴 정가는 하원과 상원이 이르면 11일 연방정부 채무한도를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라이언 위원장도 "우리는 길고도 솔직한 대화를 하며 협상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다음주 중 새해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며 셧다운 사태도 끝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ㆍ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베이너 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케어 폐기나 연기를 고집하지 않는 대신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장비에 대한 세금부과 철회나 건강보험 보조금의 엄격한 집행을 통한 예산긴축 등을 받아들인다면 타협할 뜻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지도부인 에릭 캔터(버지니아) 하원의원은 "대통령이 장기적인 재정적자 축소에 동의한다면 다음주 중 정부 문을 다시 열기 위해 이번주 말부터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존 매케인(애리조나), 수전 콜린스(메인) 의원 등 공화당 일부 중진 상원의원들도 베이너 의장의 단기 증액안에 셧다운을 중단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의 이 같은 입장선회는 우선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WSJ와 NBC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셧다운 사태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공화당을 지목한 응답자는 53%에 달한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31%에 그쳤다.
또 공화당 지지도는 24%로 역대 최악으로 떨어졌고 53%는 공화당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더구나 전통적인 돈줄이자 원군이었던 미 재계마저 공화당에 빨리 셧다운 사태를 끝내라며 압력을 넣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 캐나다 정부 등 국제사회도 "셧다운이 장기화하고 디폴트 사태가 발발하면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치명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지도부의 지도력 밖에 있는 티파티가 "정부부채 상향조정과 예산안 통과는 별개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낙관은 이르다. 이들은 백악관이 오바마케어를 대폭 양보하지 않으면 셧다운 장기화를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표면적으로는 "재정감축 협상을 시작하려면 먼저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미 의회가 부채한도를 올리더라도 길어야 다음달 말까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중순쯤에는 미 의회가 또다시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국가 디폴트 우려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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