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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대지진] 방사선 공포 도쿄 현지 르포

텅빈 신주쿠 번화가 을씨년… 외출땐 마스크 착용 필수로<br>셔터 내린 식당·술집 늘고 가게엔 물건 없는 진열대만<br>교민 탈출 행렬도 잇따라

최수문 기자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가 두 번에 걸쳐 연쇄 폭발을 일으킨 지난 15일 오후7시, 일본 도쿄에서도 가장 번화한 신주쿠(新宿)역 주변의 유흥가는 텅 비어 있었다. 평소 거리를 가득 메웠던 퇴근길 직장인과 젊은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식당과 술집 등도 3~4곳 중 한 곳은 아예 셔터 문을 내렸다. 그나마 문을 연 가게도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빈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인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기자가 들어간 라면집의 종업원은 "11일 대지진 발생 이후 사람들의 모습이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최근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으니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뉴스가 나오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신주쿠의 방사선 측정치는 0.809마이크로시버트(μ㏜), 평소보다 약 20배 높은 수치다. 도쿄가 방사선 공포에 떨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에 이어 일본을 덮친 방사선 누출 공포는 불과 일 주일 전까지도 봄 기운이 가득하던 도시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원전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는 약 240㎞나 떨어져 있지만 잇단 폭발사고로 방사선 누출이 계속되는데다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도쿄가 위치한 간토(關東)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우려에 시민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간토지역에서 심한 곳은 평소의 100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검출된 가운데 16일에는 바람도 강해져 시민들의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일견 평온해 보이는 도쿄의 거리에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마스크'다. 일본에는 본래 봄철이면 심해지는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지금은 두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마스크 착용이 늘어나면서 거리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원전 사고가 알려진 후 가급적 외부공기에 피부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출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약국이나 슈퍼마켓에서는 마스크를 구입하기도 힘들 정도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달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동도 줄었다. 계획정전(제한송전)의 여파로 지하철 운행 편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휘발유 부족으로 차량이 줄어든 탓도 크지만 대지진 이후 엿새가 지나도록 빈발하는 지진과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의 행동반경이 극도로 위축된 상태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이날 아침에도 TV 회견을 통해 "현재 방사선 농도로는 인체에 해가 없다"며 시민들의 안정과 물품 사재기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생애 처음 경험하는 대지진과 방사선 누출의 공포에 일본인들의 충격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질서 있게 지진 피해를 견뎌온 시민들이 물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는 뉴스가 연이어 전해지고 있으며 실제 도쿄 곳곳의 가게에는 텅 빈 선반이 부지기수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일본 문부과학성은 그동안 하루에 한 차례 발표하던 방사선량을 이날부터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도쿄에서 서둘러 탈출하는 한국 교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11일 대지진 발생 직후 급증하다 잠시 주춤하던 귀국러시가 '방사선 공포'로 다시 시작된 것이다. 특히 지진 피해와 달리 방사성 물질은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재원들은 가족들을 서둘러 귀국시키고 있다. 도쿄 주재 국내 기업의 한 임원은 이날 "딸이 오늘 오전 시즈오카(静岡)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출발했다"며 "도쿄에서는 표를 구할 수 없었는데 시즈오카 공항에서 어렵게 한 장을 확보했다"며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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