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는 영어와 로망스어권(라틴어를 원류로 하는 언어권)에서 '육지 사이의 바다'로 불린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우리 바다', 투르크인은 '백해', 유대인은 '대해', 독일인은 '가운데 바다'라고 불렀다. 또 이집트에서는 '광대한 녹색' 바다라 불렀고, 현대에 와서는 '내해''둘러싸인 바다' 등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렇게나 다양한 이름은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의 다양한 인종ㆍ국가ㆍ언어ㆍ문화ㆍ종교 등의 영향을 방증한다.
지중해사의 대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아불라피아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바로 이 지중해의 인종ㆍ종교ㆍ정치적인 다양성에 주목한다. 그는 바람이나 해류 등의 주변환경도 중요하지만, 각 시대마다 인간의 힘으로 내린 정치적 결정에 따른 변화에 주안점을 두는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는 "인간의 역사에는 합리적 결정뿐만 아니라 수백년 혹은 수천년 뒤의 사람들도 이해하기 힘든, 따라서 그런 결정이 내려진 시대의 사람들도 필경 이해하지 못했을 불합리한 결정들에 대한 연구도 포함된다"고 지적한다.
이어 "하지만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하찮은 결정도 때로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그 사례로 500년 십자군전쟁의 시초가 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연설이나 그 기독교 동맹군에 맞서 자중지란으로 참패를 당한 오스만 육해군을 제시한다.
또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지중해를 둘러싼 육지가 아닌 지중해의 역사, 구체적으로는 지중해를 넘나든 사람들과 지중해 유역의 항구, 섬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라고 한정한다. 이에 따라 상업과 문화, 심지어 로마시대에는 정치적 통합까지 이뤘다가, 전쟁ㆍ역병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분열기를 맞는 과정을 주제로 삼았다.
저자는 기원전 2만2,000년부터 2010년까지 지중해가 다양한 형태로 분열ㆍ통합되는 과정을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1기는 트로이가 함락된 기원전 1200년 이후의 혼란기, 2기는 지중해가 혼란을 벗어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서기 500년까지의 시기다. 또 3기는 1,347년 흑사병으로 다시 커다란 위기에 빠진 시대이고, 4기는 대서양권 국가들과의 경쟁 혹은 지배에 맞서다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끝은 맺은 시기다. 끝으로 5기는 인도양으로의 통로로 전락했다가 20세기 후반 지중해의 정체성이 재발견되기까지다.
이 책은 역자의 말처럼 '내로라하는 정통 사학자가 사료에 근거해 치밀하게 저술한 이론서'에 가깝고, 당연히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이야기'보다는 분명히 어렵다. 하지만 '지중해의 진면목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교양서'라는 점은 분명하다. 4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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