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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회장, "덫에 한번 걸리면 못 벗어나"

중징계 받은 처지 심경고백<br>"프레임은 흔들수록 세져" '실패한 금융인' 낙인 한탄<br>"언젠가 만날 사람들인데…" 주변인들에 대한 서운함도


황영기 KB금융 회장이 "덫에 한번 걸리면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로 자신의 현재 심정을 우회적으로 고백했다. 지난 15일 밤 서울 삼성의료원에 차려진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부친상 빈소에서다. 이 자리에는 황 회장을 기다리는 취재진이 대거 몰려 있었다.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상당'이라는 중징계를 맞으며 금융맨으로 생명이 끝날 위기에 몰린 황 회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한마디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후10시30분쯤 나타난 황 회장은 "상가에서 그런 얘기는 예의가 아니다"며 기자들의 질문을 일축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는 종이컵 폭탄주를 한잔씩 돌린 뒤 느닷없이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 버클리대 교수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의 내용을 언급했다. 최근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에 사상 최악의 손실을 입힌 금융인'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자신의 처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최근 심경을 털어놓은 셈이다. ◇프레임에 갇힌 황 회장=황 회장은 "이 책에 따르면 공화당이 상속세(estate tax)를 사망세(death tax)로 바꿔 부르면서 유권자들이 상속세 폐지를 찬성하게 됐다"며 "민주당은 공화당의 프레임에 갇혀 이길 수 없는 선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코프 교수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코끼리)이 프레임(틀)을 왜곡해 민주당(당나귀)에 승리하는 과정을 예리하게 담았다. 그는 "외환은행 매각도 '먹튀(먹고 튀기)'라는 한마디에 국민정서가 비판적으로 바뀌면서 무산됐다"며 (규제완화 등에 대한 MB노믹스도) MB악법이라고 부르는 순간 이미 프레임에 갇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회장은 특히 "한번 프레임에 갇히면 (진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벗어나지를 못한다"며 "짐승이 덫에 걸린 것처럼 프레임은 흔들수록 더 세진다"고 토로했다. '실패한 금융인'이라는 낙인에 대한 억울함과 동시에 벗어날 방법도 마땅치 않은 암울한 현실을 한탄한 것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프레임에 가두려는 주변인들=황 회장은 정부 관료나 선후배 등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도 내비쳤다. 그는 " (이번 징계를 주도한) 금융당국 사람들이 공과 사가 분명하더라"며 "사회가 그만큼 건강해졌다라는 증거"라며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어느 자리에서건 골프, 술 한 잔 할 수 있는 관계인데도…"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평소 안면을 익혀왔던 정부 관료나 선후배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 자신을 프레임에 가두려는 데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 황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했던 때 당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부르짖으며 파생상품 투자나 해외진출 등을 독려했다. 더구나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은 황 회장의 서울고 선배이자 모피아의 '따꺼(대형)'로 불리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최근에는 모피아로 분류되는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해임 사유에 해당하지만 당시 여건과 고의가 아닌 점을 고려해 징계 수위를 낮췄다"며 황 회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은행 전ㆍ현직 경영진도 황 회장 건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실정이다. 11일 사임한 박해춘 전 국민연금이사장 이사장(황 회장의 후임 우리은행장)은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방어할 기회가 없었다"며 전임 은행장 탓으로 돌렸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그 문제(파생상품 투자 손실 문제)와 관련이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처럼 주변인들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상황에서 황 회장의 인간적인 고뇌는 무엇일까. 그는 약간 초췌한 얼굴로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게 첫째가 건강, 두번째가 친구이고 맨 마지막이 돈"이라며 "과거 선배들이 얘기할 때는 실감나지 않더니 요즘은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 해석하면 이번 사태를 거치며 그만큼 피로감과 외로움이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강력한 승부근성과 추진력으로 '금융계 검투사'로 불렸던 황 회장. 고립무원의 위기에서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 검투사로서 정면승부를 벌일지 아니면 한계를 절감하고 주변과 타협할 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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