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회계부정을 감시해야 할 외부감사인인 회계사가 기업의 회계담당자로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유수임제 도입 이후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기 위한 회계법인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과 감사인 간 갑을관계가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최근 일부 기업의 감사인 교체시 나타나는 감사 보수 후려치기는 기업과 회계법인 간의 이 같은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들이 감사인 선정시 절대적인 갑의 지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삼정KPMG에서 딜로이트안진으로 감사인을 교체하면서 감사 보수를 기존 4억1,300만원에서 3억8,700만원으로 내렸다. 대한항공은 지난 2009년에는 EY한영에서 삼정KPMG로 감사인을 교체하면서 감사 보수를 5억원에서 2억9,500만원으로 후려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난해에 감사인을 교체한 한국외환은행·하이트진로·대성산업 등도 모두 감사 보수를 깎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회계 감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4대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회계 감사를 나가보면 재무제표조차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기업이 있어 회계사들이 이를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며 "마치 시험감독관이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회계사는 "회계 감사시 자료요청을 하거나 기업을 귀찮게 하면 다음날 담당자가 시니어 회계사를 통해 실무에서 일을 보는 회계사들을 바꾸라고 지시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회계 감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감사보고서 기준 4대 회계법인이 의견거절·한정·부적정 의견을 낸 경우는 전체의 1,418건 중 43건으로 3.03%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비적정 의견을 내는 비중이 8% 정도 됐는데 이후 회계법인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 눈치 보기가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회계사들도 이 같은 인식에 동의하고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회계사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무제표 제때 제출(최소 6주 전) △발견해준 오류 또는 수정사항 곧바로 적용하기 △자료보완 요청 무시하지 말기 △회계 감사 시기 전후로 재계약 등 무언의 압력 넣지 말기 △내부 실적 보고 후라서 손익 수정 못한다고 하지 말기 △감사 때 감사인과 잦은 회식자리 만들지 말기 △계정별 세부 명세서 주기 △알아보기 힘든 회사 전산자료 문서만 주지 말기 △채권채무 조회서 같은 필요한 자료 미리 준비해서 피드백 빨리 주기 등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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