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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확보하라" 은행 치킨게임… 기업은 현금 빼내기 혈안

[흔들리는 글로벌 시장-유로존 금융경색 심화] <br>은행 자금난 커지자 해외대출 회수하고 예금 유치 출혈경쟁<br>하이네켄·GSK 등은 유로화 대신 달러·파운드화 늘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시시각각 고조되면서 유럽 은행들이 말라가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인 치킨게임(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공멸하는 극단적인 게임 이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럽에 진출한 기업들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해 앞 다퉈 유로권에서 현금을 빼내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심한 혼돈 속에 너나 없이 현금확보에 혈안이 되면서 유럽 경제의 '금융 혈맥'은 빠르게 막혀가고 있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유럽 은행들이 예금유치를 위해 치열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렉시트(Grexitㆍ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공포로 지난달 일부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유출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유럽 각국의 은행들이 예금이탈을 방지하고 새로 돈줄을 확보하기 위해 고금리와 고가의 사은품을 내걸고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다급한 것은 재정위기의 불이 옮겨 붙은 스페인 은행들이다. 스페인의 라카이사은행은 급여나 실업급여를 자동이체하는 예금 고객에게 22인치 평면TV를 제공하는 대대적인 예금유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산탄데르은행도 신규 계좌개설 고객에게 무료로 영어 강좌를 제공하는 혜택을 주면서 예금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방키아가 앞서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전에 예금인출이 있었음을 시인한 가운데 다른 스페인 은행들도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돈줄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바클레이스와 네덜란드의 ING 등은 스페인 시장에서의 예금확보를 위해 3.3~3.5%의 금리를 제공하는 캠페인에 나섰으며 HSBC은행도 그리스 지점에서 최소 6개월간 유치하는 예금에 한 해 3.5%의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런던 소재 노무라증권의 조 피스 은행 애널리스트는 "직면한 위기에 대응해 예금을 지키려는 은행들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수익이 악화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예금인출 사태를 맞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럽 은행 시스템 위기는 글로벌 은행권의 자금 흐름도 경색시키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이날 발표한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은행들의 해외 대출은 지난해 4ㆍ4분기에 직전 분기 대비 7,990억달러(2.5%) 감소, 미국 리먼 사태 직후인 2008년 4ㆍ4분기 이래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특히 해외 은행들에 대한 대출은 3.1%에 해당하는 6,370억달러나 줄어 가장 큰 감소폭을 나타냈다. 이는 유로존의 은행들이 자본확충 요건을 맞추기 위해 해외 대출을 회수하는 한편 해외 은행들은 재정위기 확산 우려 때문에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설명했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우 이 기간 동안 해외 자금조달 규모가 각각 10%와 9%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도 유로존의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현금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WSJ에 따르면 그리스에 진출한 기업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 고유 통화인 드라크마로 되돌아가는 데 대비, 그리스 내 현금을 최대한 끌어 모으고 있다. 주류업체인 하이네켄과 디아지오, 의약업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은 그리스는 물론 유로권의 현금을 빼내 달러화나 영국 파운드화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또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기업들이 결제 과정에서 선금을 최대 50%가량으로 늘리고 결제 기한을 30일에서 15일로 앞당기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유로존 이탈과 그로 인한 시장 혼돈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스 기업들 중에는 드라크마로 복귀 시 해외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미리 해외 및 국내 은행들로부터 신용 라인을 개설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은행권의 돈 흐름은 막히고 기업들도 투자는 동결시킨 채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그리스와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은 유동성 함정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다. 엑소틱스 투자은행의 그리스 자산 브로커인 게오르게 조이스는 "현재 그리스에는 심각한 유동성 경색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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