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일본 미쯔비시경제연구소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 5대 불가론'을 내놓았다. 골자는"삼성의 총매출액이 고작 1억달러도 안되는 데 어떻게 10억달러가 넘는 반도체 투자를 할 수 있냐"는 우려였다. 사실 당시 10억달러는 한국의 전체 예산 22억달러의 절반 가까운 규모였다. 앞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같은 해 3월15일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발표문을 내놓으며 사업 본격 진출을 선언했다. 고 이 회장은 발표문에서 "반도체산업은 그 자체로서도 성장성이 클 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효과도 지대하고 기술 및 두뇌 집약적인 고부가 산업"이라며 "이러한 반도체 산업을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삼성은 64KD램 개발에 성공하고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이후 8년 만에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국 반도체의 신화는 이렇게 회의 속에 자라나 갖은 비판 속에 영글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과 미래를 꿰뚫는 통찰력, 그리고 과감한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삼성 반도체의 성공에서 확인되듯 한국의 대기업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강인한 정신으로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반도체는 물론 휴대폰, 자동차, 철강, 조선, 정유, 석유화학, 기계 등 다방면에 걸쳐 글로벌 수위 수준의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도 바로 지칠 줄 모르는 투자였다. 올해 역시 삼성, 현대차, SK, 포스코를 비롯 주요 기업들은 이미 확보한 글로벌 경쟁력을 더욱 다지는 동시에 미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은 사상 최대규모인 113조를 투자하고, 11만8,000명을 새로 채용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추진 중이다. 이는 지난해 투자실적 100조8,000억원보다 12.2% 증가한 것으로 글로벌 시장선점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포석이다. 30대 그룹의 총투자 가운데 신성장동력 확보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에는 26조3,000억 원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해 24.8% 증가에 이어 26.6%가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라 신규 고용도 지난해 10만7,000명보다 10.2% 증가한 11만8,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힘입어 올해 30대 그룹의 총 근로자수는 지난해보다 5.8% 늘어난 101만7,000명으로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해 투자의 고용유발효과가 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기업들이 투자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1번지'인 삼성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이 같은 공격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10조3,000억원(메모리 5조8,000억원, 시스템LSI 4조2,000억원), LCD 4조1,000억원, AMOLED 5조4,000억원 등 총 23조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또 2020년까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5대 품목에 총 23조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현대기아차도 친환경ㆍ고연비 중소형차 개발 등 연구개발(R&D) 부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R&D 투자규모를 전년 대비 53.3%나 늘린 현대기아차는 2013년까지 고연비, 친환경차 개발과 CO₂감축을 위해 총 4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전지차 등 친환경자동차 개발을 위해 2조2,000억원(R&D투자 1조2,000억, 시설투자 1조원), 고효율, 고연비 엔진ㆍ변속기와 경량화 소재 개발에 1조4,000억원(R&D투자 1조원, 시설투자 4,000억), 각 공장 CO₂감축을 위한 에너지 관련 시설투자에 5,000억원 등이다. LG화학도 전기차용 배터리, LCD용 유리기판, 폴리실리콘 등 초대형 신사업을 위해 지난해대비 40% 가량 증가한 2조3,700억원을 넣는다. 특히 전기차용 배터리는 2013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려던 것을 2조원으로 올렸다. 이와함께 GS그룹은 에너지ㆍ유통ㆍ건설 등 주력사업에 역량을 모으는 한편 신성장동력 발굴과 해외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약 2조원보다 10% 이상 증가한 2조2,000억원을 예정하고 있다. 글로벌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는 한화그룹도 세계 4위의 태양전지 업체인 중국 한화솔라원을 인수하고,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연간 1만톤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착공하는 등 신사업 투자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또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대비 125% 증가한 1조2,890억원의 투자 목표를 세우고, 미래 성장기반을 구축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 없인 미래가 좋을 것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선점과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그만큼 밝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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