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家長)의 실직과 사업 실패, 경기 양극화로 소규모 창업에 나선 여성 사업가의 도산이 증가하면서 개인파산 창구를 두드리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최근 ‘맞벌이 부부’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파산에 노출되는 여성도 급증, 여성 파산자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8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에 따르면 서울변회가 지난 3월부터 운영 중인 개인파산ㆍ면책변호사단에 접수(3~6월)된 파산 신청건은 1,757건으로 하루 평균 21건꼴이었다. 이 가운데 여성이 828건으로 전체의 47.1%에 달했다. 여성 비율은 초기에는 20~30%에 불과했으나 6월 이후 절반에 육박하는 등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6월에는 총접수건(287건) 중 여성이 146건으로 남성(141건)을 처음으로 앞질렀으며, 7월에도 6대4의 비율로 여성이 많은 실정이다. 특히 기혼여성들의 파산신청이 급증, 가정보호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6월 4개월간 파산신청 여성(828명) 가운데 기혼여성은 86.4%인 715명을 차지했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6월 현재 여성 취업자는 약 991만명으로 1,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전체 취업자의 42.2%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특히 40대 여성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2%로 20대 남성(8.2%)과 50대 남성(10.1%)보다 많고, 30대 남성(16.5%)과 40대 남성(16.3%)에 이어 세번째로 비중이 높다. 하지만 여성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종사자(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정기적인 임금 없이 일하는 경우)가 각각 18.6%, 14.8%여서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파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여성 취업자가 많은 게 현실이다. 서울변회의 한 관계자는 “기혼여성은 사업을 하던 부친이나 남편 등 가족들의 갑작스러운 부도에 따른 보증채무에 시달리거나, 자신이 소규모 창업을 했다가 빚을 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6월 중순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린 김모(41)씨. 남편이 강남에서 이동통신 대리점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김씨가 변호사 사무실까지 오게 된 것은 사업 실패로 떠안은 빚 때문이다. 남편이 자신과 부인 명의의 보증으로 사업자금을 여기저기서 끌어 쓴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사업실패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김씨가 허드렛일로 겨우 생활하고 있지만 3억여원에 달하는 채무 원금은 차치하고 매달 백만원이 넘는 이자를 감당하기도 벅찼다. 주위 사람에게 개인파산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렵게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것이다. 김씨처럼 전업주부였다가 느닷없이 빚더미를 짊어진 경우 못지않게 요즘 들어서는 자신이 직접 창업에 나섰다 경기침체에다 경험부족 등으로 주저앉은 여성 파산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6월 중 서울변회에 파산 신청한 여성 중 자영업자는 30%선으로 3월보다 10%포인트나 증가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작은 빵집을 운영하던 주모(45)씨. 중소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박봉으로는 대학생인 두 남매를 뒷바라지하기 힘들어 사채를 빌려 조그만 빵집을 차렸다. 그러나 석달도 안 돼 손을 들고 말았다. 사채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 3,000만원이던 채무가 두 배로 늘고 채권자들의 독촉이 심하자 남편과 상의한 끝에 파산을 신청하기로 했다. 서울변회에 들어온 파산 신청자 10명 중 7명가량(66.3%)의 파산 금액이 1억원 미만에 그치고 있는 것도 소자본 창업이 많은 여성들의 파산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영순 우미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여성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빚을 떠안은 경우가 많아 남성들에 비해 채무 해결에 어려움이 많다”며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 여성의 신용회복을 위한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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