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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내 아우‥어제밤도 하얗게

정시용시인 아들 구관씨 北동생 상봉"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26일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에서 이뤄지는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정지용 시인의 아들 구관(73ㆍ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씨는 며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헤어질 당시 동생 구인(67)씨의 해맑은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설?기 때문이다. '열일곱살 소년이 이젠 일흔이 다 됐는데 얼마나 늙었는지.' '그 동안 혼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이런 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 구인씨는 6ㆍ25때 "행방불명 된 아버지를 찾으로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당시 미쳐 피란을 못한 정지용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난 뒤 서울 녹번동(옛 경기도 녹번리)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며 글읽기로 소일 하던 중 "시내에 갔다 오겠다"며 나간 뒤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후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친이 '월북시인'으로 알려지는 바람에 구관씨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한때 광부생활을 하는 등 어렵게 살아왔다. 이 때문에 그는 88년 선친의 작품이 해금되기 전에는 자식들은 물론 부인(송연기ㆍ66)에게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숨겨 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 때 북측 후보자 명단에 동생 구인씨가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지난 98년 중국 옌벤에서 '지용제'를 열었을 때 그곳 문인들에게서 "정지용 시인의 아들 구인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 이상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지냈었다. 서울에 사는 여동생 구원(66)씨와 함께 선친의 사진과 시'향수'를 노래로 만든 테이프를 준비하고 형제상봉의 날을 손꼽으며 지냈지만 아쉽게도 구인씨는 2차 방문단의 최종명단에서는 빠져 있었다. 그 때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번 3차 북측 이산가족 상봉 단 최종명단에는 동생의 이름이 포함돼 이날 센트럴시티 메리어트호텔에서 꿈에 그리던 형제상봉의 감격을 누리게 됐다. 구관씨는 "구인이가 이번에 상봉대상 남측가족 명단에 아버지의 이름을 넣은 것은 '정지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해 나를 찾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구인이는 아버지의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탓인지 피아노를 잘 쳐 형제들 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었다"고 회상했다. 구관씨는 동생에게 줄 선물과 관련 "생각 같아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지만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해서 고심을 했다"며 "아버지 관련 사진과 책, '향수'를 노래로 만든 테이프는 기본적으로 준비했고 여기에 양복감 한벌과 신발 등 생필품 몇 가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구인이를 끌어안고 마음껏 울어보고 싶다"는 구관씨의 마음은 반백년만에 만난 동생의 손을 잡고 선친이 노래했던 대로 실개천이 흐르는 고향(충북 옥천)의 들녘으로 벌써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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