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사진) 전 주나이지리아 대사가 13세기 말 유럽에서 라틴어 필사본으로 널리 읽히던 ‘로마인들의 지혜(라틴어 원제 Gesta Romanorum)’ 번역서를 8일 내놓았다. 외무고시 2회 출신인 이 전 대사는 지난 2000년 주나이지리아 대사를 마지막으로 외교관 생활에서 은퇴한 후 본격적으로 번역 일에 나섰다. 1980년대 중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번역해 이름이 알려진 후 ‘천로역정’ ‘걸리버 여행기’ ‘군주론’ 등 ‘팔리지는 않고 두껍기만 한’ 책을 주로 번역했다. 그는 1970년 현대문학에서 고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데뷔했다. 그런 필력을 바탕으로 했기에 번역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졸업은 못했지만 가톨릭신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웠던 게 ‘장미의 이름’처럼 교회를 배경으로 한 책을 번역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이번 ‘로마인들의 지혜’도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영어로 돼 있어 라틴어가 적잖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 책을 입수한 경위도 특이하다. 20여년 전 네덜란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라이덴대학교에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인에게 부탁해 복사본을 얻어 보관하고 있다가 4년 전 번역을 마쳤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이제야 출간하게 됐다고 이 전 대사는 소개했다. ‘로마인들의 지혜’는 유럽ㆍ중동의 설화와 판타지 등을 담은 44개의 에피소드로 성서와 성인의 전기를 비롯해 이솝 우화집,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 고전작품을 토대로 만든 교훈적 설화도 상당수 포함하고 있어 중세 교회의 설교에 자주 인용됐다고 이 전 대사는 설명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명심보감처럼 어른과 아이들 모두가 즐겨 읽었고 자기 수양과 처세술의 교과서로 여길 정도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다는 점에서 꼭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