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일 내놓은 예산요구안에는 ‘복지예산은 늘고 (성장을 위한) 건설 등의 투자는 제자리’라는 최근 몇 년 동안의 등식이 또다시 담겼다. 다만 각 부처의 재량권이 늘어난 만큼 불필요한 예산이 대폭 줄어든 것은 인정할 만하다. ◇복지ㆍ보건예산 늘고 건설ㆍ교통예산 제자리=저출산ㆍ고령화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 육아 및 노인요양시설 예산요구가 급증했다. 지난해 2,738억원에 불과했던 보육시설 운영지원비가 올해 5,567억원으로 뛰었고 기초생활보장급여 및 의료급여액도 증가했다. 또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지역건강보험을 지원하기 위해 4조983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요구했다. 문화 및 관광예산 증가세도 눈에 띈다. 문화재 보수정비 이외에 지역신문 발전기금에 250억원, 신문 공동배달을 위한 신문유통원에 250억원 등이 필요하다고 정부는 밝혔다. 국방예산도 올해 20조5,301억원에서 12.6% 늘어난 23조1,069억원으로 전망이다. 반면 전통적으로 예산요구액이 높은 건설ㆍ교통예산이 제자리걸음이거나 크게 감소했다. 수송 및 교통 분야는 일반국도예산ㆍ공항건설예산이 줄어 올해 예산 대비 5.7% 감소했다. ◇“일단 많이 달라” 관행 크게 줄어= 일단 무조건 많이 요구하고 보자는 과거 정부부처의 예산요구 관행이 대거 사라졌다. 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 전체 예산에서 부처별 예산한도를 정한 뒤 부처들이 마음대로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의 톱다운(Top-down)제도가 도입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즉 각 부처들이 주요 사업이나 산하기관 예산을 설계하게 되면서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꼭 필요한 예산만 요구한 것. 이에 따라 전년도 예산 대비 예산요구액은 2003년 28.6%, 2004년 24.9%이던 것이 2005년부터 뚝 떨어져 5.0%였다가 2006년에는 4.4%에 그쳤다. 예산처는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3분의2 가량이 예산처가 제시한 한도 내에서 예산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 “KBS 보조비 288억원” “헌재 도서관 332억원” =그러나 일부 기관들의 무분별한 예산요구 관행은 여전했다. 국회는 의원회관 보수와 노후시설 개선에 115억원, 지방거주 의원의 서울 숙소를 짓는 데 66억5,000만원, 국회방송을 전용채널로 만드는 데 80억원이 필요하다며 예년보다 566억원이 늘어난 3,933억원을 요구했다. 과거 5억원대의 최저운영비만 썼던 방송위원회가 내년 349억원의 예산을 요구하면서 부처 가운데는 무려 ‘6,880%’라는 폭발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이 가운데 최근 광고매출 급감으로 적자에 시달리는 한국방송공사(KBS)에 지원되는 돈이 무려 288억원에 이른다. 예산처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KBS에 국제ㆍ사회교육 방송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이처럼 큰 예산이 요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헌법재판소는 지역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는 헌법재판소 도서관 신축건립비에 332억원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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