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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유예협약」 다시 도마위에/진로 화의신청 계기로
입력1997-09-09 00:00:00
수정
1997.09.09 00:00:00
최창환 기자
◎각종 혜택 불구 대상기업 회생 실패로/은행·종금사 등 금융기관 부담만 가중진로그룹의 화의신청을 계기로 금융계 일각에서 부도유예협약의 실효성과 존재이유에 대해 다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협약적용에 따른 각종 혜택에도 불구하고 진로가 화의신청이란 법적 절차에 의존해 갱생을 모색함에 따라 은행 등 협약적용대상 금융기관의 부담만 잔뜩 키운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은행과 종금사 등 협약적용대상 채권금융기관은 그동안 (주)진로 등에 대해 대출금상환 유예, 협약적용기간 연장, 협조융자 등의 혜택을 베풀었다. 실사결과를 바탕으로 이 정도의 지원이면 관련 기업들이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국 이같은 채권금융단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할부금융 등 협약비적용대상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 움직임을 진로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협약대상 금융기관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비적용 금융기관들이 실속을 차리는 바람에 진로의 회생 가능성은 다시 미궁에 빠진 셈이다.
화의제도가 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해 주고 기업이 화의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소송을 통해 강제집행해야 하는 등 금융기관의 입장에선 법정관리보다 불리한 데도 채권금융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도유예협약 적용에 따라 이미 상당액을 추가지원, 물린 돈을 찾기 위해서라도 발을 빼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부도유예협약 도입의 취지는 대기업의 동반부도를 막아 자금시장 동요를 줄이고 정확한 경영실사와 기업 자구노력을 통해 부실기업을 처리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의 부실채권도 감소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부실기업 처리와 부실채권 감소라는 정책 목표달성이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재경원은 이같은 비판이 적절치 못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기업 부도처리에 대한 충격을 감소시켜 자금시장의 동요를 차단하고 협력업체 등 관련업체의 적응력을 키우는 등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한다. 또 부도유예협약의 목적이 모든 기업을 살리는 것은 아닌만큼 대농처럼 일부 기업은 살리고 일부 기업은 처리하는 등 금융과 기업부문에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번 사태의 주원인중 하나가 모기업인 (주)진로의 주식포기각서 미제출로 추가 자금지원이 불가능한 데 있는데 최근 협약을 개정, 사전에 주식포기각서를 제출토록 의무화하고 보험사도 협약적용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문제점을 보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진로, 기아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부도 직전에도 경영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게 우리나라 기업주들의 관행이다. 또 협약 비적용대상 금융기관에 대한 채권보유 비중이 한계기업의 생사를 가늠하기 일쑤다. 따라서 부도유예협약이 근본적인 부실기업 처리대책은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따라서 과다한 경영권 보호장치를 제거해 M&A시장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나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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