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유력 정치인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이 적힌 '금품 메모'에 대해 검찰이 수사 착수를 위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뇌물을 건넸다는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메모 속 인물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결국 관건은 성 전 회장 외에 뇌물거래 내막을 알고 있는 증인 등 추가증거 확보 여부가 수사 및 사법처리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언론 인터뷰 녹취록에 대해 "수사 단서로 쓸 수 있다"면서 이들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등에 대한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향후 경남기업 임직원과 유족에게 뇌물 관련 자료도 요청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범죄에 있어 공여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면서도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기 때문에 무작정 덮을 수는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일단 현실적으로 수사 착수가 가능한 인물은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거론된다. 이들 두 실장은 금품 메모뿐 아니라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난 9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 녹취록에서도 뇌물 수수 정황이 비교적 자세히 언급됐다. 메모와 녹취록 내용을 종합해보면 김 전 실장은 2006년 9월26일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10만달러를 받았다. 허 전 실장은 2007년 리베라호텔 등에서 서너 차례에 걸쳐 7억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려면 제일 먼저 공소시효를 따져봐야 한다. 이들에게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데 정치자금법의 경우 공소시효가 7년이라서 둘 다 적용할 수 없다. 뇌물죄 공소시효도 7년이지만 금품 액수가 3,000만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난다. 2006년에 금품 수수가 있었다는 김 전 실장의 경우도 특가법상 뇌물죄를 적용하면 내년 6월까지는 검찰이 수사를 진행해 기소하면 된다.
단 뇌물죄는 정치자금법과 달리 금품의 대가성을 입증해야 한다. 메모와 녹취록에는 돈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기 때문에 추가 증언이나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성 전 회장의 인터뷰 녹취록에는 뇌물을 건넬 때 '심부름한 직원'이 있다고 언급돼 있다. 따라서 뇌물거래에 동행했던 기업 관계자들을 조사해 성 전 회장이 건넨 금품이 '대선 경선자금'의 성격이었다는 점 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돈을 건넸다는 '사실 자체'를 입증하기 위해서도 메모와 녹취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은 현재 메모의 경우 자신이 자필로 작성했는지를 감정하고 있지만 정황상 이를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품 수수현장이 잡힌 CCTV 등 추가적인 물증이 확보되지 못하면 메모 등도 신빙성이 떨어지게 돼 단독증거로는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핵심 피의자가 부재 상태인데다 증거도 부족해 현실적으로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검찰이 의지를 갖고 추가 증인·증거 확보에 전격적으로 나선다면 사법처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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