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의 규제강화로 시중은행들이 실수요자에 한해 주택담보대출을 선별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구분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은행들은 현행 규정상 차주의 금융거래에서 투기수요를 확실히 걸러내는 게 힘들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십채의 주택을 보유해도 지금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대출을 신청할 경우 실수요자로 볼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현재 은행의 대출 심사역들이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구분하는 방법은 ▦매매계약서ㆍ분양계약서와 같은 증빙서류와 ▦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유무 등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다. 국민은행의 경우는 대출실행(후선)센터와 자회사 KB신용정보를 활용해 자금용도에 대한 검증작업을 거친다. 고객이 신청서에 자금용도와 개인 정보 등 각 체크 리스트를 기술하고 자금용도를 증명할 수 있는 매매계약서나 영수증 등을 첨부하면 영업점에서는 전산망을 통해 후선센터로 보낸다. 이곳에서 은행연합회가 제공하는 신용정보표를 통해 다른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금융감독원의 규제 한도를 벗어나지 않는지 등을 걸러낸다. 또 자회사인 KB신용정보를 통해 등기상황 등 첨부서류 자체의 진실성 여부를 가려내는 작업을 거친다. 신한은행은 지금까지 영업점에서 하던 대출 승인을 본점에서 하도록 규정을 강화했지만 심사 점검 항목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한은행도 대출신청서와 매매계약서 등 증빙서류가 본점 심사부로 전달되면 증빙서류가 자금용도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가려내고 기존에 다른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았던 전력이 있는지 여부 등을 가리게 된다. 은행 대출 심사담당자들은 실수요자로 위장한 투기수요를 가려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차주의 주택보유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수요자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보유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설교통부나 행정자치부 등 정부 기관의 전산망을 시중은행이 접근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자료를 은행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개정해야 한다. 김성화 금감원 은행감독국장은 “개인의 주택보유 현황이 금융사에 제공될 경우 ‘다주택 소유자는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없냐’는 반발이 터져나올 것”이라며 “따라서 법개정은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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