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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공기업에 재정부담 떠넘기는 정부

■ 공공기관 빚 줄이라더니…<br>골치 아픈 사업 맡겨놓고 원가보전 등은 '나몰라라'<br>37% 넘는 고배당도 문제<br>현수익구조론 계속 빚에 허덕<br>결국 정부 혈세 수혈 불가피 공공요금도 잇단 인상 가능성


현수익구조론 계속 빚에 허덕… 결국 정부 혈세 수혈 불가피
공공요금 인상도 줄이을 듯


"누구는 빚 무서운 걸 몰라서 빚을 진 줄 아십니까. 정부가 골치 아픈 사업들을 잔뜩 떠맡겨놓고 그나마 비용 보전할 길은 안 열어주니 공기업들로서는 해결할 도리가 없었던 거지요."

한 대형 공기업 임원의 하소연이다. 정부가 지난 11일 공공기관들의 부채증가를 억누르겠다며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발표한 뒤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심정은 대체로 이렇다.

실제 내년도 정부예산안 관련자료들을 들여다보니 주요 공공기관들이 정부 등 공공 부문으로부터의 보전·보조 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빚을 줄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실제로는 은근슬쩍 재정부담을 떠넘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철도시설공단이다. 철도시설공단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은 선로사용료이며 정부는 그 법정요율을 31%로 정해놓았다. 하지만 이 정도 요율로는 도저히 고속철도 건설 같은 대규모 사업의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

관계당국의 내부 시뮬레이션 자료를 보면 현행 요율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올해 약 17조원인 누적 금융부채가 박근혜 정부 임기 말인 오는 2017년에는 약 21조원으로 늘어나고 2030년에는 무려 3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선로요율을 올리거나 정부가 선로건설 비용 분담비율을 높이지 않으면 부채를 해결할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은 미온적이다.

석탄공사의 사정은 더 답답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내부진단에 따르면 석탄공사 경영부실의 74%는 정부 영향 탓으로 분석돼 있다. 더 이상 자구노력만으로는 빚을 해결할 수 없어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정부는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석탄공사 문제를 풀려면 생산원가를 보전할 수 있도록 탄가를 인상하거나 다른 기관과 통폐합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어떤 것도 당장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고배당도 문제다. 정부가 지난 이명박 정부 집권 5년간 공공기관들로부터 걷은 정부출자 수입은 총 28조3,547억원(결산기준)으로 당초 예산안을 통해 국회에 보고했던 전망치보다 무려 37.7%(7조7,628억원)이나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기재부는 내년에도 배당성향을 무려 21%로 잡아놓았다.

'원금 상환능력이 마이너스다.'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석탄공사, 그리고 광물자원공사에 대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린 진단이다. 차입금을 세전이자지급전이익(EBITDA)으로 나눈 배율이 음(-)의 수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철도공사와 한국전력은 영업적자로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였다는 진단도 곁들여졌다.

쉽게 말해 현재 상태로는 아무리 영업을 해도 빚의 이자나 원금도 갚기 힘든 상황이라는 뜻이다.

철도시설공단도 사정이 나쁘기는 마찬가지. 이 공사는 현 상태로 낮은 요금(선로사용료율 31%)을 유지하다가는 누적 금융부채가 오는 2030년께 31조9,355억원에 이르리라는 관계 당국의 시뮬레이션 자료도 확인됐다.



이들 공공기관의 공통점은 현행 수익구조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빚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요율 인상 등을 통한 수익구조 개편 △정부 재정 투입,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자본확충 △과감한 민영화나 기관 통폐합 등이 추진돼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무엇 하나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기획재정부가 지난 11일 공공기관에 자산매각과 방만 공공기관 임직원 보수 동결·삭감, 원가 절감 등을 골자로 한 경영 정상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으나 이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선 자산매각의 경우 팔고 싶어도 제대로 팔릴지 의문이다. 한 에너지공기업 간부는 "에너지나 주택, 교통 분야 공기업들이 보유한 자산 중 비교적 덩어리가 큰 것은 해외 광구나 국내 택지개발용 토지, 관련 시설 등일 텐데 이미 글로벌 자원개발 붐도 한풀 꺾여 광구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국내 토지도 부동산 불경기인데 큰돈을 들고 올 새 임자가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공기업 임원은 "자구노력을 위해서라면 헐값에 매각했다는 논란을 사도 면책해주겠다는 게 정부의 발표 내용이지만 솔직히 이 정권이 끝난 뒤에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느냐"며 "설령 정부가 면책해줘도 야당이 청문회에 세우겠다고 벼를 텐데 어느 공기업 경영자나 간부가 총대를 메겠느냐"고 고충을 토로했다.

임직원 보수 삭감·동결 등은 어느 정도 원가 절감에 보탬은 되겠지만 천문학적인 빚의 규모를 줄이기에는 조족지혈이라 근본처방이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과욕을 부리면 도리어 그 부담은 국민의 호주머니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향후 5년 내에 12개 빚더미 공공기관들의 부채비율(지난해 220%)을 평균 200%로 맞추겠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삼고 있는데 단기간에 이처럼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공공기관들이 결국 정부의 혈세를 수혈 받아 자본금을 확충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가스공사처럼 주식이 상장된 공기업이라면 공개적인 증자도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석유공사와 같은 기관은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 결국 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공기업 적자를 메워주는 꼴이 된다.

또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이라는 결단을 내리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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