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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새 천년'의 그늘

직장인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갈수록 학창시절이 그리워진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으뜸은 역시「방학」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꽉 짜인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이제부터 『내 시간의 주인은 나』라는 자유가 피워내는 뿌듯함, 그리고 방학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비밀스러운「나른함」이 던지는 왠지 모를 설레임.이같은 생각은 아마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하는 사회인들 뿐만 아니라 지금 각급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 학생이면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방학이 반갑지 않은 아이들이 적지 않다. 교문이 닫히는 방학중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료급식소에 몰리는 배고픈 아이들. 「외환위기 탈출」이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광경이다. 지난 18일에는 700여명의 아이들이 「배고픈 아이들을 위한 평화의 거리」에 참여,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방학중 우리에게도 밥을 주세요』라는 피켓과 풍선을 들고. 현재 교육부가 파악하고 있는 결식아동수는 16만4,000여명에 이른다. 97년의 1만1,000여명은 물론, 98년 13만9,000여명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났다. IMF체제 이후 중산층의 한귀퉁이가 대거 빈곤층으로 떨어진 데다 이혼율이 늘어나는 등 가족해체가 심화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이들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고·특별회계·성금을 합쳐 연120억원 규모로 학기중에는 점심을 제공하고 방학중에는 주·부식 구입용 농협상품권(12만~15만원)을 지급하거나 지정식당을 운영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방학중에는 하루 한끼도 못먹는 어린이들이 많다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특히 식당은 눈치가 보여 기피하고 상품권은 어린이들 급식용으로는 그 효과가 별로다. 서울의 경우 지난 학기중 학교에서 무료급식 혜택을 본 아이들은 2만9,700여명 이었으나 이번 방학기간중 9,900여명만이 상품권을 받았다. 이렇게 신청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못살고 굶는 아이」로 또래사이에서 찍힐까봐 그렇다는 것이다. 그나마『아빠에게 상품권을 드렸더니 라면 몇개만 사고는 모두 술을 마셔버렸다』는 어느 초등학생의 얘기에서 알 수 있듯 애당초 현실적이지 못했다. 입만 열면 나라의 앞날이 어린이들에게 달렸다고 외치면서, 교실마다 컴퓨터를 설치한다고 자랑하면서, 밥을 굶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우리모두의 부끄러움이다. 언론의 지적에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알맹이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갑작스럽게 급조된 회의에서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겠는가. 결식아동 문제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이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태조사부터 배분에 이르기까지 사랑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교실에서 형식적으로 숫자를 파악하고 상품권 지급 같은 손쉬운 방법을 고집한다면 근본적 해결은 멀기만 하다. 새로운 세기를 맞는다는, 그리고 새 천년을 맞는다는 들뜸도 이제 많이 가라앉았다. 차분히 한번 생각해 보자. 새로운 세기의 화두는 무엇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요즘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혁명, 디지털혁명, 그리고 게놈프로젝트로 대변되는 생명과학의 혁명 등을 답으로 내놓지 않을까 싶다. 옳은 얘기다. 하지만 그것 뿐일까. 새 세기에도, 또 새 천년에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테크놀로지에 의해 변모되는 미래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건 그 미래사회의 경제 운용방식은 자본주의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하고 인간의 심성 저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욕망의 덩어리가 삶의 질을 이만큼 끌어올렸고, 또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을 결여한 이기심은 설 땅이 없다. 빌 게이츠가 수백억달러의 자선기금을 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타임」에 의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자선활동이라고 털어놓는다. 실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저쪽 나라의 어지간한 사람들에게 자선활동은 일상이다. 굳이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 카네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저들은 지독한 개인주의의 밑바탕에 탄탄한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고 어차피 이 세상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나뉘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가진 자들의 따뜻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새 세기가 왔다고, 새 천년이 밝았다고, 온통 장밋빛으로 물든 세상의 한켠에서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 JW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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