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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이란 눈이 인지하는 빛의 형태로, 하나의 태양에서 시작된 빛이지만 개개인이 받아들이는 색 감각은 서로 다르다. 여기에는 신체적 차이도 있지만 사회적 배경이 은연중에 개입되기 때문에 '도시의 색채'는 그 문화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서울과 중국 베이징을 소재로 도시화(都市畵) 연작을 발표했던 화가 서용선(60)이 더 넓은 세계로 붓질을 확장해 다양한 도시의 색을 포착해냈다. 도시 문명의 집약체인 뉴욕에서는 미국 특유의 명랑함 위에 갈색과 검정의 묵직함이 감지된다. 특히 대도시의 축소판 격인 뉴욕 지하철이 작가의 눈을 끌었다. 그는 "사람을 도시로 실어나르는 뉴욕의 지하철은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라며 "마치 공중목욕탕처럼 말쑥한 우리 지하철과 달리 100년 이상 달려온 뉴욕의 지하철은 산업혁명 직후의 기술ㆍ기능을 그대로 노출하며 도시의 실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구획을 나누는 듯한 수직ㆍ수평의 선들, 또렷한 비상구(EXIT) 표지판, 무표정한 사람들이 여운을 남긴다. 반면 호주의 도시는 자연과 문화가 혼합된 색을 보여준다. 멜버른에서 그린 신작들은 동서양 재료인 한지와 아크릴이 만나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파스텔 질감을 형성했다. 한층 서정적이다. "호주의 색채는 자연과 문화가 혼합된 색이라 녹색, 붉은색에도 흰 빛이 감돌아요. 유럽식 영국 전통의 색깔과 호주의 밝은 자연이 결합돼 원색이라도 밝고 화사하지요. " 그런가 하면 독일, 체코 등 동유럽의 색은 강렬하다. 집단체제를 강조하는 강인함, 기능성만 집약된 그들 문화가 반영됐다고 작가는 해석했다. 동서독이 공존했던 베를린은 우리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했고 브란덴부르크 문과 티어가르텐공원, 베를린성당 등의 장중한 인상은 폭 5m, 높이 4m의 독일제 리넨 천에 담겨 학고재갤러리 전시장에 걸렸다. 과거 정치적 대립이 첨예했던 지역이 오늘날 박물관이 돼 관광객을 맞는 모습이나 역사적 사건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는 도시화 연작과 조각 등 40여 작품을 '시선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9일부터 4월10일까지 전시한다. 백의민족이라 불리는 동시에 오방색(五方色)을 즐겨 사용한 우리의 진짜 색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감상해볼 만하다. 또한 작가의 대표작인 자화상 연작도 볼 수 있다. '그림 그리는 남자'로서 자신을 시퍼런 돼지나 정체 모를 붉은 짐승 같은 '못난이'로 그려낸 시선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맞춰 서울대 정영목 교수가 집필한 '시선의 정치-서용선의 작품세계'가 출간돼 역사와 인간 실존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가 서용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02)720-1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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