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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자상] 터널의 역사

터널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인류는 주거를 위해, 물건을 저장하기 위해, 또는 맹수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땅 속의 구멍을 이용해 왔다. 네안데르탈인의 별명이 혈거인(穴居人)이라거나 크로마뇽인의 유적이 프랑스 크로마뇽 동굴에서 발견된 것도 결국 이같은 삶의 한 흔적이다. 터널이 어느 정도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고대 이집트. 기원전 3,000년경 건설된 이집트의 피라밋에는 사갱(斜坑)이 기반암 속으로 굴착돼 석실분묘까지 연결됐다. 도굴꾼들이 뚫은 것으로 추정되는 터널도 상당수 발견됐다. 또한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 피라밋중에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피라밋 대신 석회암산 속으로 200m나 터널을 굴착, 분묘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 기원전 700년에는 유대의 왕 히스기야가 기혼의 샘과 예루살렘성 안의 실로암 연못을 잇는 실로암 터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은 성채 공격에 터널을 이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원정시 공성기계 전문가, 측량기사, 지리학자와 더불어 굴착 전문가를 대동했다. 이는 성벽의 탑밑까지 터널을 파고 들어간 뒤 터널을 붕괴시켜 탑과 성벽을 함께 파괴시키기 위해서다. 로마인들은 터널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도로용, 수로용, 배수용 등 필요한 곳이면 어디에나 터널을 뚫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터널 굴착시 돌과 시멘트로 라이닝(lining)을 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보존상태가 양호한 것이 많다. 종교와 관련된 터널도 많다. 중국 감숙성 돈황 부근의 천불동(千佛洞)은 서기 4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동안 건설된 석굴군(群)이다. 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 그리고 우리나라의 석굴암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대서양의 비스케이만(灣)과 지중해 사이의 237㎞를 잇는 말파스 터널은 1692년 완공됐다. 이는 최초의 운하터널이자 최초로 화약을 사용한 터널이란 기록을 남겼다. 최초의 하저(河底)터널은 영국의 테임즈터널로 1843년 완공됐다. 현재 이 터널은 런던 지하철의 일부가 되어 있다. 유럽대륙을 가로막아 사람의 이동을 제한해 왔던 알프스산맥도 결국 터널에 의해 문을 연다. 현재 알프스산맥을 관통하는 주요 터널은 몽쎄니, ·고타르트, 알버크, 심프론, 뢰츠버크, 몽·브랑 등 5개. 이중 ·고타르트의 경우 건설과정에서 310명이 사망했으며, 불구자도 877명이 발생했다. 오늘날 최첨단 터널기술이 축적되기까지 인류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정구영 기자】 <<'빅*히*트' 무/료/시/사/회 800명초대 일*간*스*포*츠 텔*콤 ☎700-9001(77번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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