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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KB사태 다시 보는 한국금융] <4> 전직 금융계 수장들의 조언

오너십 없으면 '금융계 삼성'은 뜬구름… 장수CEO 풍토 만들어야

월급쟁이 은행장 입장선 대규모 투자결정 힘들어

국제경쟁력 쌓을수 있도록 유능하면 연임도 가능해야

건전성 매몰 감독정책보다 자율경쟁체제 조성 급선무

이주열(오른쪽)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7월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은행장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오너십.'

표류하는 우리 금융산업이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해 시급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전직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이 꼽은 화두다. 오너십이 확립됐다면 KB금융 사태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고 오너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처럼 수평적인 여건이 아닌 고도의 수직화된 구조에서 살아온 문화에서는 지배구조가 확립되지 않는 이상 KB금융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며 "거버넌스(지배구조), 특히 오너십의 확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수장, 특히 전직 은행장들은 이와 함께 건전성에 매몰된 감독정책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하면서 "건전성 위주의 감독정책을 바꿔야 금융사들이 보다 자유롭게 해외에 진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너십 없는 한 금융계 삼성전자는 헛된 꿈=전직 금융계 수장들은 능력 있는 CEO에 한해서 장기경영을 보장하는 유연한 CEO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시중은행장 A씨는 "금융산업에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강자가 나타나지 않고 스타 CEO도 출현하지 않는 것은 오너십이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산업이 발전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수반돼야 하는데 월급쟁이 은행장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짧은 우리 금융산업 역사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되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모두 한 금융사에서 오랜 기간 복무했다. 이들은 재무제표상 지분은 많지 않지만 조직 안에서의 상징지분만큼은 확실했다.

쉽게 말하면 금융사 오너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여기서 확보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거침없이 단행하며 빠른 성장을 이끌었다.

두 사람이 비록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대리인의 문제'를 유발시켰지만 장기경영에서 가져온 긍정적 효과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다른 전직 시중은행장은 "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라며 "그만큼 장기경영의 여건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국내 금융산업의 유일한 창업형 CEO인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 역시 강력한 지배력으로 그룹을 단기간에 급성장시켰다.



윤 전 장관은 "전문가가 은행장을 맡고 잘하면 연임하고 10년도 할 수 있는 그런 오너십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3년 단위로 회장과 행장이 바뀌는 이런 지배구조에서는 국제경쟁력을 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사회 역할 재정립해야=이사회의 역할도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KB금융 사태는 이사회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돼 조직 발전을 얼마나 저해할 수 있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특히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전무한 교수 위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은 KB금융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는 동안 아무런 역할도 해내지 못했다.

전직 시중은행장은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이사회,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가 필요하다"며 "현재 제도에서 사외이사 자격요건을 맞추다 보면 결국엔 교수밖에 맡을 사람이 없는데 그보다는 시장에 대한 안목이 있는 인물들로 사외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직관리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접근도 문제로 지적된다.

또 다른 전직 시중은행장은 "KB금융 사태가 불거진 가장 큰 원인은 내부조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금융사들은 영업에 드는 돈은 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조직 관리에 들이는 돈은 비용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며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것이 KB금융 정상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주 자본주의도 우리 금융산업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다.

전직 시중은행장 C는 "연기금은 주요 주주지만 은행 경영에는 뒷짐을 쥐고 있는데 주주경영의 일환으로라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며 "주주경영은 관치와 외풍을 막아내는 방패막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전성 위주의 감독정책 바뀌어야=시장을 대하는 금융당국의 태도 변화도 요구했다. 금융산업이 아무리 규제산업이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방망이 휘두르기식의 접근으로 일관하는 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외환위기 트라우마 탓에 당국의 규제가 금융사 도산을 막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며 "건전성만 강조하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해외 도전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관치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금융산업구조 자체가 혁신이 설 수 없게끔 변했다"고 지적했다. 권 전 원장은 "금융정책이 공급자 안정에 초점이 맞춰진 결과 금융사 간 자율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못했고 독립적이지 못한 지배구조 아래에서 생산성도 낮아졌다"며 "금융사끼리 치열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주는 식의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직 2금융권 대표는 "보험산업의 경우 해외진출이 은행보다 용이할 수 있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삼성 등 대기업 계열의 금융사들이 도리어 움츠리고 있는 현실과 그럴 수밖에 없는 각종 규제에 대해 보다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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