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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월 위기론 파다해도… "사상최대 투자" 발표 위한 발표

■정부 눈치보기 심해진 기업들<br>경제환경 크게 달라졌는데 과거방식 앞세워 개혁 공세<br>"단기적 생색내기 정책 보다 기업 자발적 변화 유도해야"

손경식(왼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해 8월17일 국회에서 열린'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공청회' 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오대근기자


"대기업마다 올해 사상 최대로 투자하고 고용한다고 앞다퉈 발표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한 10대 그룹 대외업무 담당 임원은 대기업의 요즘 분위기를 이같이 말했다. 정부 눈치를 보느라 너도나도 '발표를 위한 발표'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임원은 "오는 2~4월 세계 경제 위기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대기업이 일제히 사상 최대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비정상이지만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서 "대기업이 과연 발표대로 투자하고 고용하는지 지켜볼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일부 대기업은 최근 대기업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 수위가 급속히 높아짐에 따라 시나리오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공생발전과 물가안정이라는 현 정부의 방침에 최대한 협조하면서도 대기업 개혁을 표로 연결시켜 선거 전략을 짜고 있는 여야의 공세에도 다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은 대기업이 정부와 정치권의 관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이유는 두 갈래다. 먼저 현 정권은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또는 재벌 정책에서 실패했다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 투자와 고용 측면에서 대기업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아울러 선체제에 돌입한 여당과 야당은 대기업에 대한 공세를 중요한 득표 전략으로 다루면서 대기업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실제로 정국이 급속히 선거 국면으로 전환되자 무리한 대기업 개혁 구호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이 심해지면서 국내 대기업이 협력회사를 압박하고 이에 따라 경제력이 대기업으로 집중된 점에서는 반성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정권 말 또는 선거철에 대기업을 마치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 표와 바꾸려 드는 것은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민주통합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일각에서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논의가 진행되는 것도 걱정거리다. 익명을 요구한 10대 그룹 고위관계자는 "금융권을 통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돼 굳이 출총제가 존재할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이미 실질적인 장치가 있는데도 출총제를 도입하는 것은 기업의 투자 의지만 꺾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수봉 대한상공회의소 조사1본부장은 "처음 출총제가 도입된 후 25년가량 경과해 경제환경도 크게 바뀌었는데 과거의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연구와 고민이 부족한 가운데 과거 패러다임의 정책을 도입할 경우 효과는 미진하고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은 정부가 상생발전을 핵심 정책으로 들고 나온 후 지식경제부ㆍ공정거래위원회ㆍ동반성장위원회 등의 동시다발적 파상공세에 지칠 대로 지쳤다고 일제히 호소하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특히 현 정부의 물가 규제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물가 규제의 성공 사례가 있는가"라면서 "유통 과정의 낭비 요인을 파악해 손질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나 최종단계에서 물가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반자본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일부 기업에는 민관 합동 기관인 동반성장위원회에 참여하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익공유제를 기어이 도입할 경우 기업이 목표를 대폭 올려 잡고 나서 목표 달성을 못했으니 나눠줄 것이 없다고 하면 그만 아니냐"면서 "단기적인 생색내기 정책보다는 기업 스스로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에 대해서도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굳이 대기업이 나서는 것이 좋지 않은 업종이 있지만 공정하고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업종을 세세하게 가려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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