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지급결제 허용을 놓고 갈수록 이견이 확대되면서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의 연내 통과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더구나 지급결제 허용이 특정 기업을 봐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제기되면서 법안의 자동폐기 가능성마저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급결제 허용 논란, 갈수록 확산=1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자통법’에서 증권금융의 지급결제 허용 문제가 증권의 은행 겸영을 허용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안이 마련됐던 초기의 은행ㆍ증권사간의 업무영역 싸움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법안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일부 항목이 새로 추가되면서 이 같은 논란은 더 확산됐다. 실제로 국회에 제출된 자통법에는 ‘증권금융회사는 한은법 및 은행법상 금융기관으로 본다’로 명시돼 있다. 또 증권금융의 업무에 ▦투자매매업자·투자중개업자로부터 예치 또는 신탁받은 투자자의 예탁금 한도 이내에서 수행하는 자금이체업무 ▦증권금융회사 및 그 고객을 위한 자금이체업무 등이 새로 포함됐다. 자통법 제정과정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증권에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증권에 은행업무를 허용하는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이 같은 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등의 각종 규제를 피한 우회적인 형태의 은행 겸영을 허용해주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재경부는 이에 대해 “증권의 지급결제 허용을 은행의 겸영 허용으로 보는 것은 비약”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정 기업 봐주기 시비로까지 번져=지급결제 허용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특정 기업을 봐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 측은 삼성금융연구소의 보고서를 입수, 공개하면서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공개된 보고서는 지난 2005년 3월 말 그룹 내 보고용으로 발표된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방향’이다. 보고서에서는 “지급결제업무의 확보는 중장기적으로 삼성증권의 독자적인 추진보다는 그룹 차원에서 시너지를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CMA를 통한 지급결제업무의 확보는 계열사의 지급결제업무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의 절감 편익 외에도 장기적으로 그룹 내 은행 기능 확보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것임”이라고 언급된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증권금융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투자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특정 증권사의 보고서만 유독 문제를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4월 입법 안 되면 법안 자동 폐기될 수도=재경부는 현재 4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이 4월 임시국회 때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될 가능성도 크다. 대통령 선거전 돌입 등으로 법안 심사 및 논의가 사실상 어려워져 법안 심사는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나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내년 2월 국회마저 통과되지 못할 경우 17대가 국회가 내년 4월 총선 전 종료되기 때문에 법안 역시 자동 폐기되는 절차를 밟는다. 여기에다 현재 이 법안은 국회 법안 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돼 있으나 일부 의원 및 학계, 은행 등이 증권의 지급결제 허용에 반기를 들고 있고 3~4월 중에 공청회까지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법안 통과 시점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자통법에 지급결제 허용 여부를 떼내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의원 측은 “증권금융에 자금이체업무를 허용하고 긴급 유동성 지원까지 가능하도록 법을 고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지급결제 허용 문제는 자통법에서 별도로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증권금융에 한은의 긴급 유동성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지급결제업무 허용에 따른 위험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한은의 주장을 수용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결국 지급결제를 둘러싼 논란이 장기전으로 비화될 경우 법안의 자동폐기 가능성에도 그만큼 힘이 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