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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2월 12일] 잡 셰어링과 크라커, 용산

고용대란이 과연 현실화할까. 그럴 것 같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올해 취업자가 20만명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말에는 10만명 증가로 예상했던 정부가 불과 두 달 만에 예상치를 30만명이나 내려 잡았다는 사실은 고용 현실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잡 셰어링’을 대안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적극 동참하는 기업에 정기 세무조사까지 면제해준다는 소식도 들린다. 고용불안 최소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수긍할 수 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네덜란드에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네덜란드의 성공 비결 두 가지
왜 네덜란드인가. 일자리 나누기의 성공 모델이기 때문이다. 실업률 12%, 청년실업률은 30%에 달했던 지난 1980대 초반 네덜란드는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방법이 마땅하지 않았다. 물가상승분만큼 임금도 오르는 ‘물가연동 임금제’로 고임금 구조가 고착돼 새로운 고용 창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자 위기를 공감한 노사 대표는 1982년 서부해안가 바세나르에서 만나 ‘임금 동결과 일자리 분배를 통한 고용유지 및 확대’에 극적으로 합의하기에 이른다. ‘바세나르 협약’ 이후 네덜란드는 유럽의 병자에서 경제 우등생으로 거듭났다. <네덜란드의 비결 두 가지>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노조의 양보와 결단을 어떻게 끌어냈냐는 점이다.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신뢰.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 16년간 400만원을 유용했다는 사실이 최악의 부패 스캔들이 될 만큼 깨끗한 공직사회에 대한 믿음이 정부정책에 호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두번째 이유는 사회적 안전망에 있다. 설령 임금이 동결돼도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가 대타협과 경제 기적을 만든 바탕이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인다. 보장제도를 시행할 돈도 없거니와 ‘뜻’이 없는 탓이다. 정부의 의지와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는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크라커’와 ‘용산’이라는. 크라커(Kraaker)는 ‘무단거주자’를 뜻한다. 빈집에 몰래 들어가 주저앉는 이들 때문에 네덜란드의 집주인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누구든 빈집에서 24시간 이상 거주하면 내쫓을 수 없다는 법을 악용한 크라커들은 빈 집을 찾아내 눌러 살았다.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법에 호소해 소송이 진행되는 2~3년 동안 거주권을 누렸다. 무단거주자를 법으로 보호한다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거기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게 가능할까. 용산 철거민 참사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길은 없을까. 있다. 경제가 호전되면서 크라커가 크게 줄은 것처럼 우리 경제가 나아진다면 용산참사와 같은 갈등이 보다 엷어질 수 있다. 사회 안전망이 성장도 이끈다
문제는 더 이상 고성장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삼양동이나 봉천동에서 쫓겨난 철거민에게도 비빌 언덕이 있었다. 경제 도약기였기에 부지런하면 최소한의 생존은 가능했다. 지금도 그러한가. 대학 졸업장을 갖고 취업을 해도 월급 100만원에 못 미치는 ‘88세대’의 처지를 알고도 대책을 못 내놓는 시대다. 젊은이들도 희망이 없는데 중년 이후의 사회적 약자들이 철거 같은 위기를 맞으면 오죽하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결국 극렬 저항을 부른다. 이런 여건에서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지 않는 한 갈등은 증폭되고 경제 회생도 더딜 수밖에 없다. 모두 같이 가는 게 늦어 보여도 실은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다지 깨끗하지도 관대하지도 못한 우리는 빨리 먹으려다 체하는 짓거리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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