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가 불거지면서 '9월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리스가 오는 9월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져 유로존을 이탈하는 한편 유로존을 지탱하고 있는 독일 경제마저 9월 이후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또 스페인은 은행권 구제금융을 신청한 데 이어 지방정부들이 파산위기에 몰리면서 전면적인 구제금융 신청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지난달 "유로존 위기가 가을 정점으로 치달을 것"이라면서 "유럽 채무위기 해결을 위한 시간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고 9월 위기설을 제기한 바 있다.
◇그리스 9월 디폴트 위기=22일(현지시간)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1,300억유로)을 지원받는 대신 약속한 긴축 프로그램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구제금융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그리스는 자금줄이 막혀 9월 디폴트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슈피겔은 지적했다.
이달 중 그리스의 현금 보유액이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당장 그리스는 다음달 54억3,400만유로, 9월에는 31억9,400만유로의 만기도래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그리스는 앞서 2차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국유자산 민영화 ▦공공인력 감축 ▦115억유로 추가 재정긴축 등을 약속했지만 이들 조치의 이행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115억유로의 추가 재정긴축 중 구체적인 지출삭감 계획을 세운 것은 80억유로에 불과하다. 또 2020년까지 국영 기업 및 국유 부동산 매각을 통해 500억유로를 확보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3.6%인 18억유로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IMF와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 트로이카는 그리스가 2020년까지 국가부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로 낮추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4일부터 실사에 나서는 트로이카는 그리스에 긴축을 이행하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그리스는 긴축이행 시기를 늦춰달라고 맞서며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IMF가 추가 지원 중단을 시사한 데 앞서 ECB는 25일부터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독일의 필립 뢰슬러 부총리 겸 경제장관과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등도 잇따라 그리스에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안토니오 사마라스 총리는 "그리스의 현재 상황이 지난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유사하다"고 주장,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긴축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음을 내비쳤다.
◇스페인 전면 구제금융 신청하나=스페인은 은행권 부실에 이어 지방정부의 재정파탄이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스페인 은행권 지원을 위한 1,0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승인했지만 이번에는 지방정부의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22일 로이터통신은 카탈로니아ㆍ카스티야라만차ㆍ발레아릭스ㆍ카나리아제도ㆍ안달루시아 등 6개 스페인 지방정부들이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앞서 발렌시아는 20일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어 무르시아가 22일 구제금융 신청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23일 스페인 국채금리는 장중 7.368%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방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재원마련을 위해 국채발행 등에 나서야 하지만 국채 금리가 구제금융 마지노선인 7%를 넘어서면서 스페인 정부는 결국 자력으로 자금조달에 실패하고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서 스페인은 지방정부 지원을 위해 180억유로 규모의 구제기금을 마련했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방정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급해진 스페인 정부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시장개입을 재차 촉구했다. 호세 마누엘 가르시아 마르가 스페인 외무장관은 "현 시점에서 누군가가 반드시 유로화에 투자를 해야 한다면 ECB밖에 없다"면서 자산매입프로그램(SMP)을 재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스페인은 ECB의 개입 없이는 경제회생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스페인은 당초 내년 GDP가 0.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최근 0.5% 감소할 것으로 수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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