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 말을 믿고 투자를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경기 진단을 놓고 정부가 수시로 전망치를 고치자 민간 기업의 한 고위관계자가 한숨을 내쉬며 던진 말이다. 이 관계자는 “정부 당국자들은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 수준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정작 기업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의 ‘바로미터’이자 행동지침이 돼야 할 정부의 경기 진단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성장률은 물론 유가ㆍ환율 등 각종 거시 지표들을 수정하기 바쁜데다 한국은행과 재경부간 시각차로 인해 경제 현장에서 뛰는 기업들은 금리 방향성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참여정부 출범 전 내건 연평균 7% 성장 공약이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 재계는 수시로 뒤바뀌는 정부 전망치를 지켜보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수정치로 뒤범벅된 정부 목표치=지난 7월6일 재경부는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면서 연간 35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올해 30만개 정도의 일자리 창출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목표치를 낮추는 데는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같은 하향 조정은 일찌감치 예견됐던 일이다. 연초 정부가 35만~40만개의 일자리 목표치를 제시할 당시 민간 연구소들은 연간 성장률 7%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목표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제성장률도 전망이 조변석개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물론 내년 경제성장률도 5% 달성이 가능하다고 수없이 강조하던 정부가 최근 슬그머니 내년 성장률을 4%대 중반으로 내려 잡았다. 민간 연구소의 한 임원은 “4%와 5%가 갖는 의미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는데 정부는 너무나 쉽게 전망치를 뒤집는다”고 꼬집었다. ◇국제유가 75달러도 끄떡없다(?)=고유가의 영향에 대한 해석의 변화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말 ‘2006년 경제전망’을 내놓을 때 예상했던 국제유가는 55달러. 하지만 상반기 중 평균 유가가 정부 전망치를 비웃듯 60달러를 넘어섰다. 이내 정부도 하반기 전망에서 유가를 연평균 62달러로 고쳤다. 최근 유가가 70달러를 넘어서자 입장이 돌변했다. 권 부총리는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유가가 75달러 수준에 달해도 올 연간 성장률에 0.1%포인트 정도의 제한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고유가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5월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보고서에는 “국제유가가 연평균 65달러일 경우 GDP 성장률은 -0.51%포인트, 75달러는 -0.99%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돼 있다. 고유가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정부부처간 최대 10배가량 차이가 나는 셈이다. ◇부처간 ‘엇박자’에 혼란스러운 기업=정부부처뿐 아니라 금리정책 결정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과 재경부가 갖는 경기인식 괴리는 몇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경기 상승세를 확신한 한은은 지난달 콜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한은이 금리인상을 통해 긴축에 나서는 형국인데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는 하반기 경기진작을 도모하기 위해 재정을 풀겠다고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연출되고 있다. 한술 더 떠 당장의 경제 현안도 중요하지만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중장기 국가전략이 필요하다며 ‘비전 2030’을 내놓았지만 재원조달에 대한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비전 2030에서 참여정부가 지난 4년 동안 한번도 해보지 못한 성장률 4.9%를 앞으로 5년 동안 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지 자꾸 목표치만 고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세계적인 호황 사이클에도 우리 성장률은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가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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