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전공하고 시사만화가, 저술 활동도 해온 작가 최정현이 이번에는 산업폐기물을 재료로 한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자연사 박물관을 꾸몄다. 북촌미술관이 여름 특별전으로 마련한 ‘고물 자연사 박물관’전에 가면 빨간 소화기로 만든 앙증맞은 펭귄가족이 인사를 한다. 고철이 공룡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고, 마우스와 키보드로 된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린다. 눈을 돌리는 순간 숫가락과 포크로 만든 400여마리의 홍학떼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다. 무쇠솥뚜껑을 등에 지고 있는 거북이가 세상만사 귀찮은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는 듯한 모습 등 기발한 작품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 평등부부를 그린 만화 ‘반쪽이’ 시리즈로 촌철살인의 해학과 상상력을 과시했던 최정현이 최근에는 맥가이버로 변신해 산업폐기물을 소재로 만든 조각에만 매달려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부터 제작한 작품 300여점이 빼곡이 자리한다. 그의 독특한 작품은 기성 제품으로 채워진 현대의 한 단면을 돌아보게 한다. 생존과 편리를 넘어 엄청난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한편에선 본연의 목적을 다해 폐기물로 전락하는 물건들이 싸여간다. 용도 폐기된 고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은 작가의 만화적인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됐다. 컴퓨터 자판으로 만든 ‘네티즌’ 시리즈, 고철로 된 앙상한 뼈만 남은 ‘표범골격’ 등 작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과 해학이 넘친다. 전시는 고물상에 버려진 산업폐기물이 어떻게 예술작품으로 변신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초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한 예술의 사회풍자적 해학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소설가 이윤기씨가 추천문에서 “환경파괴, 동물학대, 침략 전쟁에 대한 반쪽이의 증오는 강경하고 야유는 통렬하지만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웃음이 나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라며 “만화가로서 체질화한 풍자와 해학의 끈을 잠시도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시기간동안 재활용품으로 모빌만들기 등 어린이를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매일 운영된다. 대상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며 참가비는 무료. 신청은 홈페이지(www.bukchonartmuseum.com)에서 하면 된다. 전시는 9월 24일까지 (02)741-2105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