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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녀를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 홍우진(42)씨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환율 시세표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지난 2007년 자녀를 조기유학 보낼 당시만 해도 환율은 달러당 918원85전. 하지만 최근에는 1,180원대원까지 환율이 치솟았다. 연초(1,123원35전)와 대비해도 5% 넘게 상승했다. 홍씨는 "연간 2,000만원에 달하는 학비 외에도 넉 달에 한번씩 생활비 등으로 1만달러를 송금하는데 최근 환율이 올라 57만원 정도가 추가로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달러 환율이 7개월여 만에 1,180원을 넘어서며 기러기 아빠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당장 늘어난 송금액 부담으로 환율 우대혜택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것은 물론 신용대출을 늘리고 투잡을 뛰는 등 기러기 아빠들의 처절한 생존기가 펼쳐지고 있다. 당장 환율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그리스 사태가 당분간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기러기 아빠들의 고통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러기 아빠들의 처절한 몸부림=환율이 상승해 당장 생활비가 없어도 기러기 아빠들은 해외에 있는 가족을 위한 송금 규모를 줄이지 않는다. 대신 외로운 가장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연봉 5,400만원을 받고 대기업에 다니는 박경준(43)씨는 매월 생활비 100만원을 빼고 대부분의 월급을 미국에 있는 두 자녀의 유학비로 송금한다. 특히 올해 두 자녀가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학비와 방과후학습비 부담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환율까지 치솟자 박씨는 얼마 전부터 부업으로 밤마다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박씨는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송금 시기를 미루다 손실을 보게 됐다"고 투잡을 뛰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매일 수면시간이 2시간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삶이 고단하지만 해외에 나가 있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유학비 부담에 신용대출로 급전을 융통하고자 은행권의 문을 두드리는 기러기 아빠도 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하루에 20~30통씩 환율 관련 문의전화가 오고 있다"며 "대부분은 환율 상승으로 생활고를 호소하는 기러기 아빠들로 신용대출 상품을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발품 파는 기러기 아빠들=뛰는 환율에 기러기 아빠들의 행보도 분주해졌다. 한 푼이라도 저렴한 환율을 찾아 은행 영업점이나 온라인 사이트 등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올 들어 시중은행의 인터넷 해외 송금 서비스 이용 숫자도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50~70%까지 환율 우대혜택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5월 해외 인터넷 송금 이용 건수는 1만3,219건으로 송금액은 64만6,710달러를 기록했다. 송금액의 경우 연초(53만2,172달러) 대비 20% 넘게 증가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3~5월은 해외 송금실적에 있어 계절적 비수기나 마찬가지지만 올 들어 환율 상승 여파로 인터넷 송금 이용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중은행들이 온라인에서 이벤트성으로 발급하는 환율 우대쿠폰을 지참하고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환율 우대혜택이 큰 영업점이나 은행을 찾기 위해 전화품을 파는 기러기 아빠들도 크게 늘었다. 환율 상승이 낳은 '신풍속도'인 셈이다.
하나은행 월드센터점 관계자는 "원화 약세(환율 상승) 기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기러기 아빠 가정의 고통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 우대혜택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것보다는 주 거래 영업점을 정해두고 거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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