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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뉴패러다임-공유가치경영] "한국 고추 재배 꼭 성공해 아이들 대도시 유학 보낼거예요"

르포 CJ '베트남판 새마을운동' 고추 계약재배 현장 가다

새농법 전수받은 땀응언 주민, 소득증대 꿈에 연일 구슬땀

마을회관·유치원 리모델링… 생활 인프라도 함께 개선

기업선 안정된 수급처 확보… 브랜드 이미지 제고 기대


베트남 남동부에 위치한 닌투언성 닌썬현 땀응언2마을. 강렬한 뙤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베트남 농민들이 질퍽한 고랑에 서서 허리를 굽힌 채 고추 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작업에 한창이다. 베트남 삿갓인 '농라'를 쓴 부인이 잎사귀가 여린 모종을 조심스레 이랑에 심은 후 흙을 다독이고 나면 물뿌리개를 들고 뒤따르던 남편이 모종 위에 물을 흠뻑 뿌려준다.

이랑 한줄 작업이 끝나면 농민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색 조끼를 입은 남자를 바라본다. 농민들의 모종 정식작업이 끝난 이랑을 남자가 눈으로 훑으며 점검한다. 남자가 손짓을 하자 농민들은 다시 새 모판을 들고 다음 이랑으로 향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거칠고 메마른 옥수수밭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 기어이 밭에 물을 대고 베트남 농민과 함께 고추를 심고 있는 이 사람은 고호성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과장이다. 고 과장이 농민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는 고추밭은 CJ그룹이 본격적으로 기치를 올린 글로벌 공유가치경영(Creating Shared Value·CSV) 활동현장이다.

고 과장은 "지난 2월부터 매월 베트남으로 날아와 7~10일 정도 머무르며 농민들과 함께 이곳에서 재배할 수 있는 한국산 고추 품종을 찾아내기 위해 시험재배하고 있다"며 "고추 외에 양파·마늘 등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현장 리서치까지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추밭 주인인 피난하띰씨는 "옥수수와 달리 처음 재배해보는 고추는 손품이 많이 든다"며 "새로운 농법에 관심이 많았는데 고 과장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서른세살 된 농부인 피난씨 가족은 양가 부모와 아들 둘에 고모들까지 모두 열명. 고추재배에 성공해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대도시로 유학 보내는 게 피난씨의 꿈이다.

서울연구소에서 유리온실 재배법을 연구하던 고 과장이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고추농사를 짓게 된 것은 CJ그룹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베트남 농업부, 닌투언성 정부 등 4자가 공동으로 '베트남판 새마을운동'의 불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고추 시험재배 프로젝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베트남판 새마을운동은 주요 수입 농산물인 중국산 고추의 가격·수급 불안정성 증가로 대체물을 발굴해야 하는 CJ, 한 단계 더 발전된 공적개발원조(ODA) 모델이 필요한 KOICA, 농촌개발 파트너가 절실한 베트남 정부의 입장이 맞아떨어지면서 전격 궤도에 올랐다. CJ와 KOICA가 올해부터 3년간 170만달러를 투자해 땀응언2마을에서 고추 계약재배를 하고 베트남 정부는 현장 및 행정 지원을 해주는 게 1단계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다.

다시 말해 CJ 입장에서는 계약재배가 성공하면 재배 초기 단계부터 직접 관리한 품질 좋은 베트남산 고추를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게 되고 점진적으로 중국산을 대체해나갈 수 있다. 또한 베트남 전역에서 문화·유통·식품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CJ에 대한 베트남 내 브랜드 이미지가 제고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상생적 글로벌화가 국제사회에서 핵심 가치가 돼가는 시점에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면서 이윤도 추구하는 이른바 기업의 CSV 활동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인 셈이다.



고 과장은 "현재 시험재배 면적은 0.6㏊지만 앞으로 100㏊까지 확대되면 CJ의 고추 계약재배에 참여하는 농민도 점점 많아지게 된다"며 "또한 건조장·제분시설 등 2차 작업을 위한 농업기계화도 이뤄지면서 농민의 소득증대가 지속적으로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CJ의 이 같은 결정이 반갑기는 베트남 정부가 더하다. 베트남 정부는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둔 새마을운동처럼 현재 농촌의 생활·문화 수준 개선은 물론 의식개혁까지 이뤄내기 위해 사회개혁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기술과 인력, 풍부한 자금을 갖춘 외국 기업의 중장기적 지원에 반색하지 않을 수 없다.

뜨란딴남 베트남 농업부 차관은 "한국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이번 공동사업이 베트남 농업구조 개선과 생활환경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가흥 닌썬현 부현장도 "땀응언2마을에서 진행 중인 CJ의 고추재배 프로젝트에 대해 닌투언성 정부와 중앙정부는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새마을운동의 성공과 한강의 기적이 베트남에서도 실현되기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황 부현장에 따르면 호찌민의 1인당 국내총생산(GNP)은 3,700달러, 닌투언성은 1,300달러인데 닌썬현은 55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소수민족이 주를 이루는 땀응언2마을의 경우 닌썬현 평균 소득에도 한참 못 미친다. 농업이 주요 산업인 국가지만 도시에서 농촌으로 갈수록 빈곤이 심각해지는 베트남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CJ는 이곳에서 농업환경뿐만 아니라 지역 교육환경 개선과 문화전파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미 마을회관과 유치원 리모델링 작업을 완료했고 추가로 마을 주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다. 또한 CJ는 베트남 농업발전 CSV 사업 1호인 닌투언성 고추재배에 이어 인근 럼동성에서 양채류 시험재배도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양채류 재배는 물론 패킹하우스 운영·판매 등의 사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장복상 CJ그룹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에 대한 외국 기업과 정부의 지원은 일회적이고 직접적인 게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CJ의 접근법은 다르다"며 "지역주민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지속적으로 안정적 소득을 올리도록 돕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 법인장은 "외국 기업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지역사회를 돕는 이번 모델은 그간 유례가 없던 것이어서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모범사례로 삼기 위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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