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이 60조원 아래로 떨어지고 순자산총액도 1년 만에 사상 최저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증시 하락세로 한달 넘게 자금 순유출이 지속되면서 지난해 펀드 열풍의 주역이었던 해외 주식형 펀드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해외 펀드의 투자 손실이 더 커질 경우 대량 환매(펀드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당분간 지금과 같은 유출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해외 펀드의 대량 환매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해외 펀드 순유출 지속=20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지난 18일 기준으로 59조9,031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펀드 설정액은 6월 말 60조8,919억원을 정점으로 7월부터 줄곧 줄어들었다. 7월에만 해외 펀드에서는 7,804억원이 순유출됐고 8월 들어서도 총 11거래일 중 8거래일간 순유출이 지속되며 2,084억원의 자금이 빠져 나갔다. 자금 순유출에 글로벌 증시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순자산총액 감소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62조4,668억원에 달하던 해외펀드 순자산총액은 18일 기준 48조6,265억원까지 떨어져 지난해 9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해외 펀드 규모가 이처럼 줄어든 것은 중국ㆍ브릭스 지역을 중심으로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손실 증가를 견디지 못한 자금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7월 해외 펀드 순유출을 국가ㆍ섹터별로 조사해보면 브릭스 펀드와 중국 펀드에서 각각 2,280억원, 1,710억원이 빠져나가 자금 이탈을 주도했다. 유행에 민감한 섹터 펀드와 상반기 유가 강세의 영향으로 수익률이 올랐던 동유럽 및 중남미 펀드에서도 각각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이탈했다. 최근 인도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수익률이 다소 회복되고는 있지만 일부 대형 중국 펀드들의 연초 이후 손실률이 40%가 넘어 충격을 흡수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해외 펀드 중 규모가 가장 큰 중국 펀드가 순유출세를 지속하면서 전체 해외 펀드의 자금이탈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최근 순유출 규모가 다소 축소되고 있지만 해외 주식시장의 불안감이 반영되며 부진한 모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펀드 위기감 커져=해외 펀드의 자금이탈이 계속되면서 해외 펀드를 주로 팔아온 운용사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 해외 주식형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운용사는 미래에셋자산운용(14조2,171억원)이지만 미래에셋은 국내 펀드 규모도 26조원에 달해 상대적으로 위기가 덜하다. 반면 국내 최대 브릭스펀드 운용사인 슈로더투신운용(10조1,393억원)과 국내에서 가장 큰 중국 펀드를 운용하는 신한BNP파리바투신(8조7,726억원), 피델리티자산운용(3조143억원) 등 일부 외국계 운용사들의 경우 향후 환매에 따른 유동성 위기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슈로더자산운용의 한 관계자는 “상황이 어려워 대량환매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급속하게 나빠지는 게 아닌 만큼 현재로서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가시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작은 규모나마 꾸준히 환매가 발생하는 상황에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어 이렇다 할 뾰족한 대책을 내세울 게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시장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포트폴리오 재편 필요=전문가들은 지난해 펀드 열풍 속에서 해외 펀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며 포트폴리오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미국 등 세계 주요국가의 해외 투자 비중이 평균 35% 수준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해외 펀드 비중은 42%에 달한다”며 “향후 해외 펀드의 비과세 폐지, 우수한 국내시장 펀더멘털 등을 고려하면 해외 펀드 비중이 과도할 경우 일부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승훈 한국투자증권 펀드분석팀 부장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고금리 현상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글로벌 증시가 반등세를 나타내기는 힘들다”며 “부동산ㆍ현금까지 포함한 균형적인 포트폴리오 재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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