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전세계 금융 당국은 규제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투자은행(IB)과 헤지펀드 등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이들에 대한 규제 강화가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새로운 금융규제는 은행의 자기자본 확대 등 건전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금융규제 강화가 대세로 굳어졌지만 우리의 경우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지적된다. 한국의 경우 규제가 느슨해서 문제라기보다는 촘촘한 규제의 그물망이 자율적 발전을 해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현행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금융규제를 완화해온 반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가들은 정부 주도로 금융 등 각종 산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왔다. 이에 따라 우리의 경우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규제를 풀어나가되 공적규제보다는 자율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규제 강화하는 추세=선진국들은 현재 건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위원회(EC)는 지난 7월3일 헤지펀드 및 사모투자펀드(PEF)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은행의 자기자본 강화 ▦장외파생상품 거래 규제 ▦유럽연합(EU) 차원의 중앙감독기구 설립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등이 포함됐다. 미국도 7월17일 금융기관의 자본건전성 및 유동성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규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파생상품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뇌관으로 지적되자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성남 민주당 의원은 4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 장외파생상품 규제에 대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금융투자협회에 독립적인 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위험이 높은 장외파생상품을 사전에 심의하자”는 것이다. 금융 당국도 이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홍영만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이 의원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지지한다”며 “다만 심의위원회를 금융감독 당국 산하에 두는 것은 규제 강화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에 금융투자협회가 자율심의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외파생상품 규제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금융시장 환경은 수시로 변하는 만큼 시장 상황에 맞춰 제때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사전심의를 의무화하면 이런 상품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사전심의가 금융상품의 시의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시장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다. 특히 장외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외국 은행들이 이런 규제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도 투자은행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과도한 레버리지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은행의 유동성 공급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유동성을 과도한 레버리지에 의존할 경우 리스크를 키우게 된다”며 “과도한 단기차입은 자산 가치의 폭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레버리지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쟁력 높이려면 자율성 확대도 필수=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회사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규제는 불가피하지만 금융시장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규제 완화도 필요한 것으로 시작된다. 자율성과 효율성은 비례한다. 자율성이 허락되지 않으면 효율성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2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도 포괄주의, 기능별 규율, 업무 범위의 확대, 투자자 보호 등을 통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자본시장의 효율성 증대 방안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게 인수합병(M&A) 활성화다. 정부도 M&A 활성화를 돕기 위해 기업인수목적특수회사(SPAC)제도를 곧 도입할 예정이다. SPAC는 비상장기업을 인수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투자회사를 가리킨다. 정부 당국은 오는 10월부터 SPAC제도를 도입, 기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M&A 활성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PEF에 대한 규제 완화로 지적된다. PEF는 2004년부터 국내에도 도입됐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해외 PEF들이 국내 기업 구조조정 시장을 노리고 있지만 국내 PEF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형편이다. 이는 시장참여를 가로막는 규제 때문으로 지적된다. PEF 활성화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로는 ▦의결권 있는 지분 10% 이상 확보 ▦6개월 이상 지분 보유 ▦투자 대상 제한 ▦25%의 양도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주는 PEF의 지분참여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또 외국과는 달리 부동산에는 투자할 수 없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여기에 세금까지 과중하다. 물론 PEF 규제는 투자자 손실 및 시장 혼란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지만 규제가 지나쳐 시장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다. 마치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고 마는 꼴이다. 이 밖에 높은 거래세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거래세에 따른 시장 위축을 피하기 위해 세제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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