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3> 인허가에 발목 잡힌 창조경제

산더미 서류에 도장만 수십개… 100년 묵은 가시 뽑아야<br>지자체 등 인허가 빌미… 구조·토착적 비리 여전<br>간소화도 중요하지만 명문화한 시스템 시급



'제출서류가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다(33%), 절차가 까다롭다(27%), 규정이 모호하다(16%), 처리기간이 너무 길다(12%)'

대한상공회의소는 2010년 전국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인허가 및 등록신고제도 관련 애로실태 조사'를 벌였다. 강만수 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필두로 청와대가 직접 나서 100년 묵은 인허가제도의 틀을 바꾸겠다고 부르짖던 때다.

결과는 참담했다. 전체 기업의 75.1%가 '인허가를 받을 때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사업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가 발목을 잡아 막대한 추가 비용을 물게 됐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당시 한 건설업체는 A시에 아파트를 지으면서 전체 대지의 59%를 주택용지로 설계하고 사업을 진행했으나 A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뚜렷한 이유 없이 대지의 9%를 공원 및 녹지로 조성해 시에 기부 채납하라고 요구해오면서 1,350억원의 초대형 손실을 입었다.

국정과제로 추진됐던 인허가규제 개선작업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을까. 그로부터 3년이 흘렀지만 대다수 중소기업ㆍ영세사업자들은 "피부에 와 닿는 개혁은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100년 묵은 인허가의 벽이 여전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양현봉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손톱 밑 가시와 같은 인허가 걸림돌을 정비해야 창의적 아이디어가 샘솟고 기업활동이 원활해지며 이에 따라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허가 과정 '시스템화'가 첫걸음=중앙정부ㆍ지자체를 가릴 것 없이 인허가권을 틀어쥔 부서는 이른바 '핵심' 부서로 꼽힌다. 인허가 과정에서 각종 청탁이 수시로 들어오고 굳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자연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는 게 공무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업계에서는 수십~수백 개의 인허가 '도장'이 필요한 부동산 개발사업을 할 때는 주요 부서 모퉁이를 돌 때마다 보따리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분야를 대상으로 특정검사를 벌인 결과 총 62건의 비리행위가 적발됐다. 인허가를 미끼로 한 구조적ㆍ토착적 비리가 여전히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시 공무원 4명은 지난해 지구단위계획을 제멋대로 바꿔 사업자에게 239억원의 시세차익을 몰아줬다.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인허가를 맡은 공무원들은 제대로 된 타당성 조사를 벌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허가 과정이 시스템이 아닌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감사원은 이들 공무원 4명을 징계 처분하라고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인허가 과정 간소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명문화한 시스템이 있다면 인정(人情)과 비리가 끼어들 여지도 줄어들게 된다.

황동은 대한상공회의소 규제개혁팀장은 "인허가가 때로는 소비자 안전 등을 위해 충분히 복잡할 필요도 있다"면서 "다만 가능한 부분은 사전규제가 아닌 사후규제로 돌리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밟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도 너무한 인허가위원회=지자체가 운영하는 이른바 인허가위원회도 손을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당초 인허가 과정에 전문성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현재는 필요 이상의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위원 한 명이 산하 19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시정 전체를 좌지우지한 사례가 있었고 특정 사업과 이해관계 또는 부패전력이 있는 인사들이 위원으로 장기간 연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법령상 자문위원회가 사실상 의결기구로 운영돼 공무원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된다는 문제도 나타났다. 일부 위원들은 업체들의 집중 로비 대상이 돼 비리의 고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전국 500개 기업의 절반에 달하는 52.4%가 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들 중 1%는 위원회 때문에 아예 사업을 접었다고 대답했다. 기업들의 39.7%는 위원회 안건 심의기간으로 6개월 이상을 지연했다고 응답했고 1년 넘게 지체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6.7%에 달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위원회의 권한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위원 선정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부실한 인허가 국민안전 위협=인허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인허가도 문제지만 '부실' 인허가는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심지어 국민건강과 밀접한 환경 분야에서도 이런 사례가 쉽게 발견된다. 이 경우 단순한 이권 주고받기를 넘어 국민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 환경부가 전국 60개 폐수배출 업소의 관리실태를 조사했더니 2곳 중 1곳은 구리ㆍ납같이 인체에 치명적인 특정수질유해물질을 무단 배출하고 있었다. 상수원 인근 '배출시설제한지역' 안에 있으면서 특정물질을 배출한 곳도 8곳에 달했다. 인허가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고 엄격한 사후감독 시스템도 없었던 것이다. 정진섭 환경부 수질관리과장은 "검증식허가제 및 허가내용갱신제를 도입하는 한편 기술검토 절차를 신설하는 등 개선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관련 용역 결과가 6월께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