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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유치 빛과그늘] 4. 변모하는 금융기관
입력2001-02-14 00:00:00
수정
2001.02.14 00:00:00
[외자유치 빛과그늘] 4. 변모하는 금융기관
은행경영에 '외국인의 힘' 리스크 관리등 철저해져
"ING본사를 방문했을 때 20대 후반 직원이 팀장을 맡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택은행은 외자유치 이후 임원부터 행원까지 200여명의 직원들을 ING 본사로 연수를 보냈다. 한 임원은 "이렇게 저렇게 바꿔야 한다고 국내에서 말할 때는 별 변화가 없었지만 직원들이 직접 보고난 뒤에는 스스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 주택, 외환, 하나, 한미은행 등 국내 우량은행들은 이제 대부분 외국인이 대주주로 참여해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밖에 제일은행이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됐고, 서울은행도 상반기안에 해외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등 외국자본의 국내 은행에 대한 지배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보험ㆍ종금등 2금융권 역시 마찬가지.
대주주가 바뀌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경영시스템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많이 바뀌고 있는 분야가 외환위기 이후 절실했던 '리스크(위험) 관리' 부문.
코메르츠뱅크는 외환은행에 지분을 출자한 뒤 이 은행이 현대, 대우 등 일부 대기업에 대출을 집중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은행의 목숨을 한두개 기업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 당시 코메르츠뱅크의 설명. 이후 코메르츠뱅크는 드러스트 부행장을 파견, 일정 이상의 기업여신은 직접 챙기는 등 위험을 줄여나가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도 "몇 년전만 해도 재무제표 정도만 참고했지만 이제 현금흐름, 미래수익 등을 꼼꼼히 따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일은행이 최근 정부의 부실기업 회사채 인수 요구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외국인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제재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호리에 제일은행장은 '주주가 반대한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은행의 여신 담당자들은 제일은행의 태도에 대해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다. 제일은행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였던 '계좌유지 수수료'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국내 눈치를 보지 않는 외국인 주주였다면 불가능했을 결정이었다.
은행 경영진들은 외국인 주주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분식회계니 매출 뻥튀기니 하는 것들은 외국인 주주 앞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고 단언한다. 외자를 유치하면서 철저한 회계감사를 요구하고 이후에도 감시의 눈길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자유치를 통한 선진금융 습득이 아직 미흡하다는 시각도 많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가 리스크 관리 등 일부 분야는 바꾸고 있지만 은행의 전체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은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외국의 투자자본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면서 은행의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단기적인 주가 이익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한편 외국인 주주가 들어오면서 은행인들의 '영어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영어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성골, 진골, 평민으로 신분이 나뉜다는 우스개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의 경영 참여가 많은 은행일수록 일반적인 업무 능력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더 돋보일 때가 많다"며 "이런 은행일수록 전략기획, 마케팅, 회계 등 핵심 분야는 외국인이나 해외MBA 출신들이 맡고 국내 직원들은 영업 등 일선 업무를 맡는 경향이 많다"고 말한다.
'외국인을 위한' 은행이 되는 셈이다. 외국자본이 일찍 들어온 보험이나 종금사는 오히려 외국인들이 떠나는 분위기다.
코오롱ㆍ동양ㆍ동부그룹 등은 10여년전 각각 메트라이프ㆍ베네피트ㆍ악사그룹과 손잡고 보험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코오롱은 메트라이프에 지분을 넘기고 동양과 동부는 지분을 인수해 오면서 이제 합작사는 하나도 없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칙에 치중하는 외국기업과 현지사정에 맞추려는 한국기업의 충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부그룹 고위관계자는 악사와의 결별 이후 "다시는 외국사와 제휴 안 한다"고 말하기조차 했다.
종금사 역시 한국ㆍ한외ㆍ아세아ㆍ한불ㆍ새한종금 등이 각각 바클레이즈ㆍ코메르츠ㆍ야쓰다ㆍ소시에떼 제네럴ㆍ케미칼 뱅크와 합작해 설립됐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한불종금뿐이다.
김상연기자
우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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