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장충동 체육관에는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자영업자 5만여명이 모여 '2,000만 서민과 직능 소상공인 결의대회'를 열었다. 현장에는 "골프장은 1.5%, 돌반지는 3.6%, 과연 무엇이 사치업종인가" "카드 가맹점에도 귀천이 있더냐, 업종 상관없이 1.5%로 내려라"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들은 서울 집회를 시작으로 부산ㆍ대전ㆍ대구ㆍ광주ㆍ제주에서 시위를 벌이는 동시에 회원사 500만명이 동맹 휴업에 돌입하며 대대적인 실력 행사에 나섰다.
지나친 개입은 시장경제 흔들어
중소 가맹점들의 집단 행동에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한 것은 정치권이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중소 가맹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카드 수수료 1.5%로 인하"를 앞다퉈 공언하고 있다.
결국 중소 가맹점과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지난 10일 신용카드 수수료와 관련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가맹점 수수료율의 차별을 금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대형 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를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동시에 중소 가맹점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가 우대수수료를 정해 업계가 시행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거나 지키지 않으면 영업정지나 등록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중소 가맹점에 한해 우대수수료를 적용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간 매출 2억원 이하의 영세상인이나 중소 가맹점은 대형 할인판매점 등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의 가맹점 수수료를 적용받는다. 새 법안이 시행되면 중소 가맹점의 우대수수료가 지금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은 당사자 간 흥정 없이도 매매가 되는 '희한한 법'이다. 여신금융업계에서 주장하는 헌법에서 명시한 직업 선택의 자유나 기본권, 재산권의 침해 등 법리적 위헌 소지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계약의 주체인 중소 가맹점들이나 이익단체들에 카드회사와 수수료 협상을 할 필요가 없는 '면책특권'을 주는 셈이다. 정부 청사로 달려가는 게 더 빠르고 기대효과도 클 수 있는데 구태여 협상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거래 당사자가 동의하는 일이 없어도 거래가 자동으로 성사되는 기이한 시장이 출현할 수 있는 형국이다.
정부가 시장가격을 정하거나 개입하는 경우는 있다. 독과점으로 경제에 폐해가 생기거나 공익을 해치는 등 극히 예외적 상황에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부의 가격 개입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가격체계의 혼란을 야기시킨다.
정부가 산업이나 기업의 경영, 원가, 시장 상황 등을 자세히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인 시장가격을 제3자가 정하는 건 무리다. 실상을 반영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가 우대수수료 수준을 정하거나 수시 조정하는 건 무리다. 실패하기 십상이다.
원료값ㆍ금리 우대 요구 잇따를 듯
신용카드 수수료 책정을 당국에 위임하면 중소기업들이 구입 원료나 반제품, 나아가 대출금에 이르기까지 우대가격ㆍ금리를 적용해 달라는 요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가격을 법제화하거나 가격 결정을 당국에 위임하는 일을 되풀이할 것인가.
우대수수료 법안은 현실성이 결여된 접근이다. 중소 가맹점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효과보다는 시장의 질서와 가격 메커니즘을 왜곡시키는 독소가 될 개연성이 크다. 수수료는 시장가격이다. 작위적인 책정은 지양해야 한다. 더군다나 자유시장경제를 집권 초기부터 전면에 내세웠던 현 정권에서 가장 기본적인 시장질서를 짓밟는 개정안이 마련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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