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살 난 조르주는 모범생이었는데 최근 들어 성적이 갑자기 떨어져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아이는 공부도 하지 않을 뿐더러 성적도 나빠졌다. 하지만 본인은 이 점에 그리 놀라거나 신경을 쓰는 듯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이런 갑작스런 변화 때문에 학교의 심리 치료사와 면담하기에 이르렀다. 심리 치료사는 조르주의 부모에게 최근 들어 아이에게 영향을 줄 만한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부모로부터 이렇다 할 답변을 얻지 못한 심리치료사는 결국 조르주의 아버지가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몇 달 전에 불경기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침이면 출근해서 저녁에 귀가하는 시늉을 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해고당한 사실은 아들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평소 아버지는 아들에게 학교 성적이 좋아야 나중에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누누이 말했다. 아들이 갑작스레 학업을 등한시하며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이와 같다. “직장에서 해고 당하고 또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된다고 해서 창피해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저도 공부를 안 하고 있으니까요.”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세르주 티스롱은 가족의 비밀의 실상은 무엇이며 또 이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과 해결책을 심리학적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타인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쉬쉬하는 비밀은 낱낱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표면으로 나와 폐혜를 남긴다. 저자는 이를 비밀의 스밈이라고 말하고 그 구조를 파헤친다. 저자는 “가족 내에 비밀이 있는 경우 비밀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이 사실을 털어놓는 것은 침묵을 고수하는 경우보다 언제나 낫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비밀에서 치유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밀의 내용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비밀 때문에 초래된 결과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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