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나라건 내부자거래는 처벌한다. 한국도 내부자거래는 처벌한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최고 무기징역으로 단죄한다. 그러나 정작 처벌의 대상은 최하위 수준이다. 엄포만 놓고 처벌은 손놓은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내부자거래에 대한 처벌 대상을 확대해야 증권범죄를 근절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15일 서울경제신문이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 5개국과 한국의 내부자거래 규제 법안을 비교한 결과 한국과 선진국의 내부자거래 행위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했다.
미국을 제외한 4개국은 내부자의 정보 전달행위나 거래 추천행위 모두 처벌 대상으로 삼고 엄격한 규제를 했다. 미국의 경우 내부자로부터 정보를 받은 사람이 주식거래를 할 때만 내부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자본시장법 전문가는 "내부자가 중요정보를 공시하기 전에 특정인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거래를 추천하는 행위는 특정인의 부당이득을 위한 경우가 많다"며 "결국 일반투자자가 피해를 봄으로써 증권시장에 대한 신뢰를 손상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강력히 규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내부자가 사전정보를 유출했지만 거래 추천을 하지 않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정보유출과 거래 추천행위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이 입증돼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자본시장법 전문가는 "내부자가 악화된 실적정보를 제공하면서 매도 의견을 냈다면 특정인의 손실회피를 도운 것으로 처벌받을 수 있지만 악화된 실적만 주고 주식거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 현행법상 내부자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내부자거래에 대한 처벌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가장 강력하다. 한국은 내부자거래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의 형벌을 부과한다. 일본은 5년 이하의 징역형, 미국은 20년 이하의 자유형이다. 프랑스는 2년 이하 자유형으로 수위가 가장 낮았다. 프랑스의 경우 증권범죄를 입증하지 못해 형벌을 부과하지 못하는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행정제재로 보완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태료를 부과하는 독일을 제외한 4개국은 모두 형사 처벌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를 병행하고 있다.
한국도 과징금 제재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줄곧 제기돼왔다. 일본이 과징금 도입 후 내부자거래를 단속해 적발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난 것을 벤치마킹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법인이 내부자거래를 한 경우 최대 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를 도입한 2005년부터 불공정거래 제재 건수가 많이 늘었다. 2005년 4건에서 2012년 19건으로 증가했다. 7년 동안 총 제재 건수는 140건으로 이 가운데 내부자거래에 대한 제재가 72건이나 됐다. 반면 내부자거래에 대한 형사 처벌은 21건에 불과했다. 내부자거래에 대한 사법적인 입증이 까다로운 만큼 행정제재를 통해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다.
국내에선 과징금 도입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는 증권범죄 증거입증의 어려움을 이유로 과징금 등 행정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법무부는 형사 처벌만으로도 충분하다며 행정제재를 신설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범죄 처리 주도권을 쥐기 위해 법무부와 금융위원회 간 샅바 싸움이 치열하다"며 "법리해석이 미흡한 부분을 행정적인 제재로 풀어갈 수 있지만 사법권에서는 영역침범행위로 보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선 김재경(새누리당) 의원이 행정제재 신설, 2차 정보수령자 처벌 등을 내용으로 한 관련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발의 후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박임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2국장은 "금융범죄 입증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행정제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