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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는 과연 얼마나 준비하고 있을까. 실상을 살펴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최근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미 FTA를 담당하는 실무 당국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미국과 FTA를 맺으면 뭐가 어느만큼이나 좋다고 해야 합니까.”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그게 아직 정확한 자료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슈퍼파워 미국과의 FTA는 사실상 완전 개방을 의미하고 있어 경제ㆍ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지만, 그 파고를 측량하고 예측하는 명확한 자료와 근거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국민이 접할 수 있는 것으로는 “한미 FTA가 국민소득을 2% 증가시키고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내용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8쪽짜리 보고서 하나만 있을 뿐이다. 한 부총리는 최근 기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한미 FTA를 추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결단에 어떤 내용의 보고서와 분석이 배경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실제 외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한미 FTA를 하면 감(感)으로 좋다는 것일 뿐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는 아직까지 정부 내에 없다”고 고백해 이를 뒷받침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월 중순 신년 연설에서 “미국과 FTA를 맺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그 근거로 “개방문제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라고만 했을 뿐 아직까지 속 시원한 배경을 말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정부부처, 경제5단체, 그리고 언론들이 동어반복식으로 밝히고 있는 한미 FTA의 경제효과를 제시한 것은 KIEP의 공식 보고서뿐이다. 그나마 연구원 보고서 역시 종합적인 내용 및 정확한 분석을 담지 못해 정부 당국자들마저 “한미 FTA의 영향을 가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푸념할 정도다. KIEP도 이를 인정, 현재 한미 FTA 영향을 전반적으로 다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보고서가 중구난방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미국도 일방적인 주장으로 한미 FTA를 미화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한미 FTA로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일자리도 생겨 한국의 고령화와 양극화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 하나 있는 한미 FTA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KIEP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연구로 보면 한미 FTA는 국내 산업뿐 아니라 개인간 양극화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미 FTA는 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심각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정부는 치밀한 보고서 및 분석 자료를 만들고 이를 공개해 국민적 검증과정을 거쳐야 협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FTA에 따른 치밀한 예상자료를 만들어야 협상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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