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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주는 사람 돈받는 사람
입력2004-02-22 00:00:00
수정
2004.02.22 00:00:00
국세청에서 금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접대비 실명제 때문에 혼란이 일고 있다. 음식값이 50만원이 넘으면 두 사람 이상이 나누어 지불하거나, 혼자 내면서도 신용카드 두 장 이상을 사용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원래 이 제도의 취지는 50만원이상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실명제라는 이름이 뜻하는 대로 기업활동을 위해 지출하는 돈만 기업의 경비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다만 액수가 너무 적은 것은 그 사유를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의미였는데 당초 의도와 상관없는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적응하는데 애를 먹은 것이 수표를 사용하는 일이었다. 현금은 잘 쓰이지 않고 100불짜리 지폐라도 내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기 때문에 수표를 써야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는 자기앞 수표와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내 이름이 인쇄된 수표였는데 이를 사용할 때에는 받는 사람이나 회사이름을 꼭 써야 하고 사용목적도 기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일상적인 수표 사용에서부터 돈을 누가,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주는 것인가를 명확히 구분하도록 생활화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돈 계산을 점잖지 못한 일로 여겨 돈이 오갈 때 구체적인 목적이나 이유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적지 않다. 몇 해전 배우 출신의 장관이 연극무대에 섰다가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돈 때문에 물러난 것이 좋은 사례다. 그 분으로서는 관객 앞에서 봉투를 받은 것이고 연극계의 관행상 흔히 있는 일이라 억울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돈 받는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아 탈이 난 것이다.
장관으로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극단을 위하여 받은 것이라면 일이 터지기 전에 극단의 수입으로서 말끔히 정리했어야만 했다. 재미있는 점은 돈을 준 사람은 더욱더 불분명하여 나중에 문제된 돈을 돌려주려고 했을 때 마땅히 받을 사람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다. 전경련이나 경제단체 명의로 준 것이 아니고 몇몇 기업인이 버스 안에서 모은 것이라는 데 그 돈도 봉급에서 나온 것인지 회사 경비 중의 일부인지 밝히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하여 기업인들이 줄줄이 조사를 받고 수십명의 정치인들이 구속되었는데 돈을 주고받는 주체가 불명확한 것이 큰 특징의 하나다. 기업들은 회계장부에 없는 비자금을 마련하여 돈을 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고 자청해서 영수증을 안 받겠다고 한 기업도 있었다. 돈을 받은 정치권에서도 입금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개인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제3자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배달사고도 제법 있었다. 심지어 자기 당에 쓰라는 정치자금을 남의 당 사람에게 넘겨주었다는 발표도 있으며,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이 향토장학금인 줄 알았다는 발언도 있었다. 여당의 사무총장이 당총재로부터 받았다는 돈이 국가예산인지 당의 자금인지를 법정에서 밝혀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참에 기업으로부터 일체의 정치자금을 원천적으로 받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문제의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정치하는데 돈이 필요한 이상 누군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이를 국민의 세금으로 전부 해결해주지 못하는 한 후원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의 정책개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지하는 정책을 펴는 정당에 대해 개인이나 기업이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돈을 주고받되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게 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다. 기업은 이사회 등 자금지출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을 하고 받는 쪽에서도 정해진 목적에 따라 회계처리를 하여 지출토록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본다.
어느 선배는 돈을 `찔러 넣어 주는` 관행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주는 사람의 장부에도 받는 사람의 통장에도 잘 나타나지 않고 이유와 목적도 애매모호한 돈의 정체를 잘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정치권과 경제계를 비롯해 온 나라가 몸살을 앓은 이번 기회에 그릇된 습관을 바로 고쳐 떳떳하게 돈을 주고받는 관행이 정착되기를 바란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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