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나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소다. 비록 인체가 필요로 하는 양은 소량에 불과하지만 비타민은 에너지 공급부터 생리적 기능 조절까지 그 관여 범위가 넓다. 다만 우리 몸이 다른 화합물로부터 비타민류를 합성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편식을 피하고 다양한 음식물을 꾸준히 섭취해 비타민을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골고루 먹으라'고 가르쳐야 할 학교가 학기 초부터 학생들에게 편식을 강요하고 있다. 눈앞의 입시에 필요한 과목만 집중 학습하도록 해 영양불균형을 조장하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부터 이른바 집중이수제를 통해 특정과목을 특정학기에 몰아 편성할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비입시 과목인 예체능 과목이 '몰아 배우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교과부가 밀어붙인 자율형 사립고도 운영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교과과정을 국영수 위주로 편성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자율고가 국영수 몰입 교육을 위해 비입시 과목을 교과과정에 편성하지 않거나 대폭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들은 "학생들도 비입시 과목에는 관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교육 수요자가 입시 위주 교육을 원하고 다른 학교와도 대입 실적을 두고 경쟁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의 처지가 일견 이해는 가지만 공교육 기관이 할 하소연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돈을 받고 가르쳐 성적을 올려준다'는 정체성이 뚜렷한 학원과 달리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에 기대하는 바는 다르다. 단체 생활을 통한 사회화, 또래 집단을 통한 자아성찰, 그리고 다양한 수업에서 얻는 적성ㆍ진로파악… 이렇게 단순히 입시 논리로만 파고들어서는 안 될 곳이 학교다. 수업 시수가 적어도 교과과정에 편성된 과목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힘내기 위해 탄수화물만 먹자" "3년 먹을 비타민은 1년 안에 몰아 먹어도 된다"는 등 이러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영양개념은 교육 당국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무뎌졌는지를 보여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학교의 '불량 식단'에 너무 많은 학생들의 입맛이 길들여졌다는 점이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신진대사가 요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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