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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10년 내다보고 투자 하는데 정책은 툭하면 바꿔

[심층분석] ■ 부활하는 출총제<br>규제 재갈로 투자의욕 꺾기는 문제 부활 하더라도 실효성 적어<br>시대역행 정책 되살리기 보다는 지주사제 손질·일본식 업종수 제한 등<br>대안 찾아 제도 부작용 바로잡아야



죽었다가도 살아나는 '좀비'일까. 1986년 말 제도 도입 이후 26년간 관련 법령 개정만 12번이나 거치고 폐지와 부활을 반복한 누더기 법규가 있다. 요즘 정치권이 대기업 규제 차원에서 부활시키려는 출자총액제한제도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완전 부활보다는 보완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야당은 완벽하게 부활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출총제 관련 법규는 또 한번 바뀔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개정 횟수라면 단순 평균으로 2~3년마다 한번씩 기업지배구조 근간이 바뀌는 셈이다. 적어도 10년을 내다보고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죽을 맛이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제의 침체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투자를 하라며 청와대까지 기업 총수들을 불러들이는 와중에 여의도에서는 투자에 재갈을 물리는 핵심 규제장치를 쏟아내고 있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출자총액규제에 대한 논의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출자총액규제를 폐지할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출총제가 있는 나라가 거의 없는데다 경기흐름이 꺾어질 때 규제강화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출자총액규제라는 전면적 제도의 틀을 바꿀 것이 아니라 규제폐지 이후 비틀어진 대기업의 행위방식을 보완ㆍ수술하는 방안을 우선 모색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개복수술이 아니라 덧난 수술부위에 약을 발라줄 때라는 얘기다.

◇출총제 부활 해도 유명무실=출총제는 도입 초기 매우 강력한 규제력을 가졌다. 1986년 말 도입된 출총제의 첫 모습은 자산 4,000억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이 순자산의 40%를 초과해 다른 회사 주식을 갖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내용이었다. 5년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익숙해 있던 대기업들의 손발은 완전히 묶일 판이었다.

하지만 1992년 4월 처음 시행된 지 8개월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적용대상이 30대 기업집단으로 한정된 것이다. 이후 2년여 뒤 출자한도총액 규제가 순자산의 25%로 한층 엄격해지기는 했지만 외환위기 여파에 결국 1998년 2월 폐지됐다.

출총제가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에 비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논리와 환란 충격 극복을 위해 대기업 간 사업교환을 하려 했던 정부의 필요성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물론 출총제는 1999년 말 다시 살아나 2001년 4월부터 시행됐지만 이후 연이은 제도 완화로 거의 사문화됐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9년 3월 사라졌다.



물론 출총제가 또 부활할 조짐을 보이는 데는 대기업들이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 규제만 풀렸다 하면 탐욕을 드러내는 무분별한 확장경영 탓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998년과 1999년 출총제가 폐지됐다가 다시 부활된 배경에 대해 "출총제 폐지 후 계열사 출자의 급증과 부실 계열사 지원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자기자본 한 푼 없이도 '가공자본'을 동원해 부채비율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한 그룹 전체의 부실을 초래하거나 같은 그룹 내 부실계열사의 유상증자를 과도하게 지원해 한계기업의 퇴출을 가로막은 것이다.

◇지주회사 제도 손질, 일본식 규제 도입 등 대안 찾아야=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출총제 부활을 거론하는 것은 대기업들이 또다시 과도한 탐욕에 도취돼 있기 때문이다. 중소ㆍ중견기업뿐 아니라 빵집ㆍ슈퍼마켓 같은 소상공인의 골목상권까지 대기업이 침범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 역시 정치권 못지않게 심각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출총제 재도입은 정답이 될 수 없다는 데 입을 모은다. 보완책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이에 대해 4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의제 사업지주회사제도 도입 ▦순환출자규제 ▦일본식 업종 수 제한 ▦이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이다. 시민단체나 재야 학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집단소송제 도입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계열분리 명령제 도입 ▦부권소송제 도입 등을 차선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출총제 폐지 당시 대안으로 기업집단공시제도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만큼 추가적인 보완책을 실행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의제 사업지주회사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 설립요건이 너무 까다로운데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들을 위해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 현행법상 지주회사 요건인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등을 구비하지 못하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지주회사로서 활동하겠다고 자청할 경우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간주해주는 제도다. 다만 이 경우 자회사나 손자회사 등의 출자제한 등 행위제한을 함께 완화해줘야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일본식 업종제한제도 역시 대안 메뉴로 입에 오른다. 일본은 2002년 일종의 출총제인 '대규모 사업 회사에 대한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없애면서 자산규모 등에 따라 업종을 제한하는 규제를 펼치고 있는데 이것이 출총제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다만 업종제한 기준을 정할 때 자칫 관계당국의 자의적 재량이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어 1990년대 우리 정부가 펼쳤던 '업종전문화시책'의 실패를 답습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밖에 순환규제출자 등도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기업들이 설비투자나 연구개발 등에 쓸 돈을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쓸 경우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아울러 이중대표소송제는 역대 대법원의 판례에서 인정되고 있지 않다는 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국내 법체계와 맞지 않아 도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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