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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버자이너 모놀로그

"말할수 없던 것을 말하는 기쁨"지금 대학로는 미국과 런던, 예루살렘과 베를린을 돌고 국내에 상륙한 연극 한 편에 술렁이고 있다. 지난 5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 평균 관객 점유율 90%를 기록했던 '버자이너 모놀로그'(Vagina Monologues)가 무대를 대학로로 옮겨 2차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작은 배우이자 극작가인 미국인 이브 엔슬러가 200여명의 여성들을 상대로 그들의 성기 (Vagina)에 관해 인터뷰한 뒤 독백(Monologues) 형식으로 만든 연극이다. 국내 2차공연은 등장인물을 한 명으로 줄이고 극 구조를 더 다듬어 초연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이 작품의 핵심은 다름아닌 '버자이너'에 있다. 외국어가 주는 편리함이란 때론 단어의 의미를 뼈 속까지 느낄 수 없다는 데 있는 법. 우리야 평범하게 발음하는 이 말 역시 그네들의 포스터에선 'V'로만 볼 수 있었다 한다. 가장 돋보이는 점이라면 문제의 인식과 귀결이 실상 '버자이너'에 있음을 정확히 파악한 작가의 혜안이다. 말할 수 없다면 비밀이 되고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돼 두려움이나 죄의식을 낳는 법. 극은 그간 금기시 돼 왔던 것을 직시할 뿐인 작업을 통해 무시당해 온 여성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긍정케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계몽이나 상념에 젖어 길을 잃거나, 녹아 들지 못한 표현에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닐까 싶던 부담감도 무리 없이 자연스런 진행 덕에 잊을 수 있었다. '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했다는 뜻일 것이다. 배우 서주희는 세 살 어린아이부터 20대 직장여성, 40대 중산층여성, 70대 할머니, 폭력을 피해 쉼터로 온 여성, 강간 피해자 등 각계 각층 여성의 독백을 넉넉히 한 몸에 담아냈다. 우리 문화를 서양 극에 투영시키고 배우 안에서 다양한 색깔을 찾아낸 연출도 높이 살 만 했다. 다만 공연장인 컬트홀은 소극장의 참 맛일 무대와 객석의 교류를 표현하기엔 약간 부족해 보였다. 무대 위 배우와 함께 극을 완성시킨 것은 삼삼오오 앉아 있던 40대 여성들이다. '한창 일 할 나이'라는 동년배 남성들과는 달리 '한 물 간.' 이라는 칭호에 익숙해 져야 했던 '짧은 퍼머' 부대들이 시종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숨을 쉬고 박장대소했다 눈시울을 적시며 30줄 배우와 여타 관객들에게 극의 의미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던 자들이 말할 수 없던 것에 관해 입을 여는 시간. 뉴욕 자선공연 때는 글렌 클로즈, 우피 골드버그, 수잔 새런든, 위노나 라이더, 케이트 윈슬렛, 멜라니 그리피스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앞다투어 무료 출연했었다는 사족을 단다. 1월13일까지. (02)516-1501.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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