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가 눈속에 파묻힌 7일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25층 삼성전자 회의실. “눈이 오는데 고생스럽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건넨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은 8,000억원의 사회헌납, 소송취하, 구조조정본부 기능축소 등 메가톤급 내용을 한줄한줄 읽어내려갔다. 삼성이 바뀌고 있다. 혼자만 잘 나가면 ‘만사 OK’를 외치던 ‘1등주의 삼성’이라는 헌 옷을 벗어버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국민 속의 기업’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2월7일은 삼성이 새롭게 태어난 날”이라며 “국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국민과 사회 속으로 파고드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삼성=지난해 중순쯤 모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국내 10대 기업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했다. 당시 삼성에 대한 평가는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서는 1등이었지만 좋아하는 기업에서는 순위가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국내에서 가장 투자를 많이 하고 가장 고용을 많이 하는 기업인 삼성이 왜 좋아하는 기업에서는 1등을 하지 못했을까. 재계 한 관계자는 “반삼성에 대한 기류의 원인이 단순히 1등에 대한 반발때문만은 아니다”며 “현재 평균치보다 두 세발 앞서나간 삼성의 기업문화와 평균치인 한국사회가 부딪히며 반삼성이라는 독특한 흐름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번에 내놓은 반삼성 대책은 일단 삼성 스스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돈을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지적 받아온 삼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이에 대한 해법을 스스로 내놓겠다는 의지이다. 특히 그 동안 합법성을 강조해왔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증 증여문제에 있어서도 사과를 하고 부당이득으로 주장돼온 부문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삼성의 인식이 바뀐 것이다. 삼성그룹은 8,000억원의 어마어마한 수업료를 내고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실정법’ 에 호소하는 원칙을 포기하고 ‘국민정서법’을 받아들이며 국민에게 사랑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삼성이 인식의 전환을 하기 시작한 신호탄”이라며 “승계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에 대해 유감의 뜻을 피력한 것과 공정거래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취하한 것을 특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실천이 문제=삼성의 반삼성 대책에 시민단체들은 ‘알맹이가 빠진 대책’으로 폄하했다. 또 일부에서는 삼성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백기투항’을 했다는 대결구도로 몰고가고 있다. 이러한 분분한 의견을 잠재울 수 있는 당사자는 역시 삼성그룹이다. 국내 기업중 사상최고 금액인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기로 결정한만큼 이 금액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삼성의 해결해야 할 문제다. 또 추가로 내놓은 3,500억원 중 이재용 상무가 내놓을 800억원의 재원마련도 골치다. 부진, 서현씨의 경우 이 회장이 대신 내놓는다고 하지만 이 상무는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던지 보유한 현금을 내놓던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다 고 윤형씨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등 비상장 주식의 현금화도 고민거리다. 사회기금에 대한 처리보다 더 어려운 것이 그 동안 합법의 테두리에 보호됐다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각종 삼성식 경영 행위들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일방적인 양보’로 비춰질 정도의 초고강도 수위의 대책이지만 시민단체들이 계속 문제제기를 해온 구조조정본부의 조직개편의 구체적인 안은 없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누적돼온 ‘반삼성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선 보다 더 강력한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