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슈진단/끊이지않는 건설업계 비리사슬] 뒷돈 없이는 사업 어려워 ‘악순환’

수도권의 한 중견건설업체에서 주택사업담당 부장을 맡고 있는 A씨는 최근 연일 터져 나오는 건설업계 비리 뉴스를 접할 때마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노라 하는 대형건설업체들이 잇달아 검찰 수사를 받고 있지만 업계의 비자금 문제는 사실 어느 특정업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건설 비리는 `인허가 당국-시행사-원도급 시공사-하도급 시공사 및 자재납품업체`에 이르는 주체들이 구조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여서 어느 한 두 업체를 수사하는 정도로는 풀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기름칠` 없이는 사업이 안 된다(?) = A씨가 수도권의 한 대규모 아파트 건설사업을 담당하면서 겪었던 고충은 건설업계 비리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A씨가 담당했던 사업은 당시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들여 대규모 사업부지를 매입했던 탓에 하루빨리 사업승인을 얻어 분양을 해야만 했다. A씨는 최대한 빨리 승인을 얻기 위해 도시기반시설 설치와 아파트 건설규모를 최대한 관련 법규에 맞춰 제출했다. 그는 또 거의 매일 관할 자치단체 담당부서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담당자를 설득하고 때로는 담당 공무원의 민원과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처리해줬지만 사업승인은 수개월이 지나도록 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자사의 임원들과 상의한 끝에 이른바 `봉투`을 쥐어주기로 했다. 그는 담당공무원을 사업현장 설명 명목으로 초청한 뒤 사업계획 자료라며 은근히 `서류봉투`를 내밀었고, 담당자는 일절 대꾸 한마디 없이 자신이 들고 온 서류철 속에 봉투를 집어넣었다. 그 후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사업승인이 떨어졌다. A씨는 “그전에는 관리직만을 맡다가 처음으로 주택사업을 맡게 됐던 것인데 건설사업이라는 게 소위 기름칠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통감했다”며 “연일 보도되고 있는 건설업계의 비리문제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 건설 영업맨들의 피할 수 없는 일과”라고 털어놨다. ◇부문별로 얽히고 얽혔다 = 건설 비리 사슬은 주택사업 뿐 아니라 건설부문 전 분야에서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관급공사의 경우 공사수주입찰 점수를 0.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건설업체들이 치열한 로비를 벌이는가 하면, 아예 업체들끼리 입찰가격 등을 담합해 공사를 나눠먹기도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급공사 한 건을 따내기 위해 업체들끼리 적게는 수십 대 일에서 많게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아예 공사일정별로 낙찰업체의 순서를 정하는 식의 `낙찰계`담합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업체의 자력으로 사업 인ㆍ허가를 받거나 공사를 수주하기 어려울 땐 정치권에 간접지원 사격을 요청하기도 한다. 최근 비자금 수사의 도마에 오른 대우건설도 이 같은 이유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란 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시행전문업체의 임원은 “민간시행사나 공공발주처 입장에선 부실경영 상태에 있던 건설업체에게 선뜻 시공을 맡길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대우건설도 사업수주를 해야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데 워크아웃 기업이란 딱지를 달고는 정상적인 사업수주가 어려워지자 정치권 로비라는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해결방안은 없나 = 건설비리 근절을 위해선 우선 현행 건설 관련 인ㆍ허가 절차를 좀더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도시계획 등에 관한 심의는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제도가 활성화돼 있는 반면, 주택사업 등과 관련한 사업승인 등은 여전히 개별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체제로 굳어져 있어 비자금 로비 등 비리발생의 여지가 상존해 있다는 것이다. 공공 공사의 발주제도의 개선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현행 입찰자격사전심사제도만 해도 공사실적과 기술능력보다는 경영점수 평가에 치우쳐 있어 공사경험이 없는 페이퍼컴퍼니가 난립해 공사입찰경쟁을 과열시키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페이퍼컴퍼니 난립으로 공공 공사를 따내기가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 만큼 어렵다는 인식이 건설업계에 만연해 있다”며, “이처럼 공공 공사 수주가 어려워지자 일부 건설사들은 비자금 조성 등을 통한 로비를 해서라도 공사를 따내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밖에도 건설회계 시스템의 투명화와 불공정 하도급거래 단속 강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제도적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