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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포커스] '오후 4시 은행 영업 종료' 오해와 진실

셔터 내린 뒤… 시재·대출 심사 등 4~5시간 업무 계속









대출 심사건 많은 달은 11시 퇴근… 저녁도 대부분 배달음식으로 때워

영업시간 탄력 운용 사회적 합의 필요

獨·日 등 영업시간 한국과 비슷해, '문 닫는 시간이 경쟁력' 이해 안돼


오후4시 A은행 서울 강북의 한 지점. 은행 문은 닫혔지만 고객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4시까지 은행에 들어온 고객들은 모두 업무를 처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은행을 모두 빠져나간 시각이 대략 5시께. 이때부터 이 지점 은행원 K씨의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은행 문이 닫힌 후 가장 중요한 일은 시재(은행에 수납된 돈)를 맞추는 일이다. 창구별로 은행원들이 각자의 전산상 숫자와 현금을 맞추고 전체를 취합해 다시 맞춘다. 이 작업이 끝나고 출납 책임자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은행 금고문이 닫힐 수 있다. 돈이 안 맞을 경우 이 작업은 수차례 반복돼야 한다. 각종 전표와 장표도 거래 실적에 맞춰 일목요연하게 보관해야 한다. 은행에서 전표는 거래에 따른 근거자료로 수십년 동안 보관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도 많다.

이런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면 보다 난도 높은 대출 심사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대출이 시스템으로 승인된다지만 책임자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대출도 있다. 기업 대출 심사는 훨씬 까다롭다. 이 밖에도 다음날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이나 예·적금과 관련해 고객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야 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고객한테는 마케팅 차원에서 전화도 돌린다. 이런 일련의 업무들이 평상시에는 대략 오후8~9시께에 종료된다. K씨는 "대출 심사 건이 많거나 월말에 고객이 많이 몰리는 경우, 실적 회의가 있는 날은 오후10~11시까지 근무하는 일도 허다하다"며 "저녁 식사도 대부분은 배달 음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은행 영업시간 4시 종료' 질타 발언 이후 은행권 안팎에서 이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고액 연봉에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은행원들이 고객들을 위해 더 희생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은행 문이 닫힌 후 더 바빠지는 은행원들은 최 경제부총리의 다소 뜬금없는 영업시간 연장 발언이 원망스럽다는 입장이다. 현재와 같은 영업 시스템에서도 가족과 저녁을 먹는 날은 한 달에 손을 꼽을 정도다. 오전에도 9시부터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7시30분께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B은행의 한 임원은 "부총리가 해외 은행을 예로 들었다지만 해외 은행의 경우 점심시간에는 아예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며 "점심시간에도 2교대 3교대로 운영하면서 식사 시간도 20여분에 불과한 우리나라 은행원들의 서비스 경쟁력을 두고 전체적으로 금융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질타하는 것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의 도이체방크나 일본의 미즈호은행 등은 우리나라와 영업시간이 같거나 더 짧기도 하다.

영업시간의 탄력적 운용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보다 큰 범주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지적한다. C은행의 서울 강남 지역 지점장은 "오피스가 밀집한 지역의 경우 오전11시까지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수백 곳을 아예 오전11시에 문을 열고 오후6시까지 영업하는 식으로 모두 바꿔나간다면 정부가 전향적으로 허용해줄 수 있겠느냐"며 "정말로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면 그런 파격적인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인터넷 은행의 출범, 비대면 채널의 강화, 은행 적자 지점 증가 추세 속에서 영업시간 연장이 과연 금융경쟁력 회복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모바일 금융 환경으로 은행들은 점진적으로 지점을 축소하거나 통폐합하면서 판관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영업시간 연장은 자칫 비용만 증가시킬 수 있고 이는 다시 고객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은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팽배하지만 마지못해 일부 지점을 중심으로 영업시간 연장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이미 신한은행은 안산 원곡동과 공항출장소 등 69개 특수점포에서, 우리은행은 공항출장소 등 36개 점포에서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서울 서초구 우면동지점 등 고객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위주로 오후7시까지 애프터뱅크를 운영하고 외국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주말에도 외화송금센터를 열고 있다.

우리은행이나 KEB하나은행의 경우 지역별 거점 점포나 수요가 많은 지점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변형근로시간제를 공단 등 일부 필요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은행권은 전 지점의 영업시간을 늘리는 식의 전향적인 연장 방안은 검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윤홍우·박윤선기자 seoulbir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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